제목 :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본문 : 요한복음 13장 1-11
오늘 말씀을 남긴 사람은 사도 요한이죠. 요한은 사랑의 사도라고 불려지는 사도이고요. 주님이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표현하기도 했어요. 사랑을 잘 알았던 요한이, 오늘 본문을 통해서도 예수님의 사랑에 관하여, 그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한 단어로 표현하라면 그것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그 사랑을 깨닫고, 우리도 예수님을 온전히 사랑하며 살아가길 원합니다.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애굽에 10번째 재앙을 내리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면 죽음의 천사가 지나갈때 그 피를 보고 그 집의 첫 것의 생명은 모두 지켜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애굽백성은 그 명령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애굽백성의 사람과 동물의 첫 것은 다 그날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 재앙을 경험 안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떠나게 합니다. 노예생활에서 해방이 된 거예요. 양의 피로 인해서 구원을 받은 그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양이 죽고 그 피로 인해서 생명이 살게 된 것입니다. 지금 그 유월절 전입니다. 주님은 온 세상의 죄를 짊어지신 양이되셔서, 유월절이 되면 잡히시고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십니다. 주님 스스로도 이제 이 세상을 떠날 것을 아셨습니다.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아버지께로 돌아가시는 것이라고 했어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주님이 오셨던 그 자리로 돌아가시는 것이라는 뜻이죠.
우리도 언젠가는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그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께도 돌아가는 것입니다. 짧은 여행을 마치고 영원한 안식처로 돌아가는 거에요. 요한복음 14장 3절에는 예수님께서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주님이 가셔서 거처를 예비하시고, 다시 오셔서 제자들도 그곳에 있게 하신다고 하셨어요. 이것이 제자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겠죠. 그들은 자기 것을 버리고, 집도 없이 그렇게 주님만 바라보고 좇았던 자들이었어요. 그런데 그들을 위해서 주님이 거처를 예비하여 주세요. 내가 준비한다면 얼마나 준비가 되겠어요.. 그러나 주님이 직접 준비해 주시니 그 보다 좋은 거처는 없는 것이겠죠. 주님을 따르면서 그러니 근심할 필요 없어요.
주님은 자기 제자들을 사랑하시는데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큰 고난을 앞두시고 자신만을 돌보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어요. 여러분, 사람의 마음은 변해요. 정말 뜨거운 남여의 사랑도 변해요. 특히 자신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다른 이를 사랑하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제 자기 몸이 찢길 것을 아시면서도,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조금뒤면, 지금 같이 있는 제자들이 다 도망가고, 배반할 것도 알고 계셨어요. 그래도 사랑하신 거예요. 우리가 주님의 이 사랑을 받은 자들임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나의 형편과 상황을 따라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내가 형편과 상황이 고난이라 할지라도 주님을 끝까지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유다는 자신의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마귀에게 생각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팔아버립니다. 여러분, 마귀가 언제라도 여러분의 마음에 예수를 버리게 만들 수 있어요. 예수보다 은33냥이 더 크게 보이게 할 수 있어요. 예수와 세상의 돈과 힘과 권력을 바꾸게 유혹할 수 있어요.
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셨습니다. 모든 것은,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고난의 잔을 말해요. 그 고난의 잔을 마심으로 모든 영혼을 구원하셔야만 하는 고난을 말해요. 주님은 그 맡겨진 고난을 죽기까지 감당하셔야 하셨던 것입니다. 무거운 사명을 맡기는 아버지의 마음, 감당해야 하는 아들의 마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나 그 고난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은, 우리를 향한 사랑과 ,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가실 것이라는 믿음이었어요. 우리도 십자가의 고난이 끝이 아니요. 결국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임을 안다면, 그 십자가를 견뎌낼 수 있지 않을까요….
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주님과 제자들과의 저녁 식사는 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식사는 지금까지의 저녁 식사와 사뭇 달랐습니다. 주님은 식사를 하시던 중에 일어나셔서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셨어요. 그리고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 시작하셨습니다. 당시는 슬리퍼 같은 신발을 신고 다녔기 때문에, 제자들의 발은 늘 먼지투성이였어요. 주님은 이제 그 제자들을 떠나시면서, 그들의 발을 씻기시는 거예요. 당시 풍습으로는, 발을 씻기는 자는, 그 집에 종이나, 여자가 손님을 맞을 때 하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스승이며, 하나님아들이신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기 시작하신 거예요. 분위기가 어땠을까요? 제자들은 매우 당황스러웠겠죠. 갑작스러운 스승의 모습에 제자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을 거예요. 종이 하는 일을 주님이 하셨기 때문이에요. 유대사회에서 살아온 제자들로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너무나 생소하면서도 지극히 겸손한 모습이셨습니다. 어느 주석가는 이 주님의 모습을 보고 섬기는 왕자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요.
요한복음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누가복음을 보면, 사실. 제자들은 이 자리에서 서로 누가 크냐고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스승님이 처음 부르신 건 나야, 내가 있을 때 너희는 없었잖아. 내가 더 예수님의 말씀을 더 많이 들었어. 기적도 내가 더 많이 체험했어요. 나는 예수님은 늘 3명만 데리고 다니실때 그 3명 중에 1명이야. 그러니까 내가 너보다 높은 자야” 혹은, “나는 배하고 그물도 버렸어, 요한은 나는 아버지 버렸어. 근데 너는 주님을 위해서 버린 게 없잖아” 서로 싸웠던 거예요.
이런 제자들의 모습을 보셨고, 그들을 잘 알고 계셨던 주님은, 마지막 식사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마지막 가르침을 행동으로 보여주신 거에요. 그것은, 자신을 낮추는 지극히 겸손한 섬김과 사랑이었습니다. 3년을 마치면서 주님이 보실 때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까지의 가르침보다 더 고상한 하늘의 지식이 아니었어요. 죽은 자도 살리는 성령의 불같은 능력이 아니었어요..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잘을 씻기시고 왜 그런 행동을 하셨는지 말씀하세요.
12.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누가 높냐고 싸우던 제자들이 스승의 낮아짐을 보고, 분명 아무런 말도 못했을 것입니다. 분명, 서로 누가 높냐고 싸웠던 모습이 부끄러워졌을 것입니다. 교만한 마음들이 심판을 받았을 거예요.
이제 십자가라는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고난을 당하실 하나님의 아들의 거룩한 손이, 또다시 낮은 곳을 향하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아들의 그 손은 지금까지도 아무도 만지려 하지 않았던 문둥병자를 낫게 하셨고, 소경의 눈에 진흙을 바라 눈을 뜨게 하셨어요. 그 손은 죽은 자를 일으키셨고, 간음 중에 붙잡힌 여인을 일으킨 손이었어요. 그 손이 제자들의 더러워진 발을 씻기는 거예요. 제자들이 그 모습을 보고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베드로의 차례가 다가왔어요.
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베드로는 이미 주님을 향해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제자에요. 인간의 경배와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손이 자신의 더러운 발을 씻으시려 하니.. ‘어떻게 주님의 손이 내 발을 씻으시겠습니까” 그는 주님의 행동에 이해할 수 없기에, 이렇게 물었습니다.
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주님의 하시는 일을 우리는 그 때, 그때 다 알 수 없어요. 이해조차 못할 때도 많아요.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아요. 그러나, 그 시간이 지나고, 나중이 되면, 왜 그때 주님이 그렇게 나에게 하셨는지 깨닫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가 이해되지 않고 지금 내가 알 수 없다고 해서 주님의 하시는 일이 대해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아야 돼요. 그 모든 것은 다 나를 위해서 주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8.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베드로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에요. 다른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주님을 보면서, 다른 제자들은 몰라도, 자신은 절대 자신의 더러운 발을 주님께 내어드릴 수 없다고 단단히 생각했습니다. 절대 못씻습니다. 어떻게 주님께 이렇게 더러운 발을 씻게 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주님이 베드로를 씻기지 않으면 상관이 없다고 하십니다.
9.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씻기지 않으면 주님과 상관 없다는 말씀에, 베드로는 손과 머리도 씻어 달라고 합니다. 베드로가 어떤 면에서는 엉뚱해 보이고 성격도 급해 보이지만, 정말 주님을 사랑한 것은 확실합니다. 다 버리고 쫒은 주님과 상관없이 살고 싶지는 않은 거예요. 주님의 그 말씀 한 마디에 베드로는 주님과 더 가까이하고자 손과 머리도 씻어달라고 말하는 거예요.
베드로의 이 대답에 주님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고, 온 몸이 깨끗하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육체적인 목욕에 관한 말씀이 아니에요. 10절 끝부분과 11절을 보면 알 수 있어요.
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예수님을 파는 자가 나오고, 그는 깨끗하지 않다고 주님이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내용을 풀어보면, 12명 중 11명은 목욕을 했고, 1명은 목욕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죠. 1명은 누구예요? 가롯 유다예요. 이제 예수님을 배반하고 팔 자에요. 그럼 11명은 목욕을 했고, 유다는 목욕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죠. 또 다른 말로, 11명은 깨끗한데, 유다는 깨끗하지 않다는 말이에요. 이것은 무슨 말이냐면, 중생, 즉 거듭남을 경험했느냐 안 했느냐를 말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영접하고, 과거의 죄의 모습을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남을 경험했느냐 안 했느냐를 말하는 거예요. 주님을 따르기 전에 내가 즐기던 죄, 내가 좋아하던 세상의 것들, 욕심들, 그것이 완전히 새롭게 거듭난 사람, 물세례만이 아니라, 성령세례로 탈바꿈된 자를 목욕한 자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주님이 보실 때, 11명은 완전히 변화된, 거듭난 제자들이었어요. 목욕을 한 자들이었어요. 이전에 더러운 죄를 하나님의 사랑을 영접하고 다 씻어낸 자들이었어요. 완전히 새롭게 거듭난 사람들이었어요.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겉모습만 보고는 알 수 없잖아요…. 그들은 세상을 보고 부러워하지 않았어요. 배와 그물을 버리고, 다시 배와 그물을 가지려고 하지 않았어요. 완전히 죽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각들이 다 죽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가롯 유다는 목욕을 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목욕을 한 적이 없어요. 주님을 따르기 이전에 지었던 더러운 죄, 자기 욕망, 자기 욕심, 생각들이 죽고 다시 산 경험이 없어요. 무엇보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도 못했고, 영접하지도 못했습니다. 3년동안 주님과 함께 하면서, 주님의 사랑을 깨달았어야 했는데… 그 사랑을 영접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주님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 말슴하셨어요. 그 주님의 사랑을 보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어야 했어요. 그러나 그것을 알지 못했어요. 발을 씻기는 자리에 유다도 있었어요. 자신의 발을 씻기시는 주님의 사랑을 알고 주님을 파는 것을 돌이켰어야 했어요. 그러나 그는 그걸 몰랐어요. 물세례는 받았을지 몰라도, 영혼이 거듭나는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한 거예요. 그래서 그는 주님을 팔기로 결심했어요. 돈을 받고 팔아버립니다. 그를 향해서 주님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신 거예요.
여러분, 십자가를 향한 한걸음 한걸음의 발걸음을 내딛으시는 주님을 묵상하고 생각하면서, 우리가 정말 깨달아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에요. 모든 것을 버리고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에요. 하나님은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고, 모든 영광을 가지신 예수그리스도는 자기 몸을 찟고, 모든 인간들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시는 어린양과 같이 자기 생명마저도 버리시기까지 사랑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마음으로 영접하고 완전히 새롭게 거듭나지 않으면, 우리는 목욕한 자가 아닙니다. 깨끗한 자가 아니에요. 이 사랑을 알고 깊이 영접하지 않으면, 언젠가 마귀의 유혹으로, 돈 때문에, 예수를 버릴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마지막까지 그 더러운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어주시기까지 낮아지시는 겸손과 사랑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이 놀라운 주님의 사랑에 눈뜨고, 그 주님을 더욱 사랑하며 살아가실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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