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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별 설교 예문

[설교 예문]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고린도후서 4장 7-18절)

by 크리스천투데이 일본지사 2023.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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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본문 : 고린도후서 4장 7-18절

오늘 본문 고린도후서는 ‘눈물의 편지’라고 불려질 정도로,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생각하면서 매우 간절한 마음으로 쓴 편지입니다. 고린도라는 지역은 그 당시 상업적인 번영을 이룬 국제적인 항구 도시였어요. 그렇다보니, 많은 인종이 뒤섞여 살면서 각종 우상들이 있었고, 빈부의 격차가 매우 심한 도시였습니다. 특히 고린도는 퇴폐적인 윤리 생활로 악명이 높은 도시였습니다. 그곳에 바울은 교회를 개척한 것입니다. 오늘 고린도 후서는 고린도교회에 거짓 교사들이 와서 바울이 사도가 아니라고 분란을 일으켰어요. 뿐만 아니라 세상적인 핍박과 유혹이 많은 고린도교회이었기 때문에, 바울이 성도들의 믿음을 위해서 마음으로 쓴 편지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감정과 마음이 드러나는 구절이 곳곳에 담긴 성경이고, 성도들을 향한 사랑과 염려가 깊이 강조되어 있는 성경이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 오늘은 4장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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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우리’는 문맥상으로 보면, 복음을 전하는 바울 사도와 그리고 바울과 동역하는 동역자들를 말합니다. 하지만, 더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세상 속에서 복음을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며 사는 그리스도인이라고도 볼수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고 합니다. 바울의 그리스도인에 대한 인식은, 질그릇에 보배를 담고 있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당시에 가장 흔했던 그릇이 질그릇이에요. 흙으로 만든 그릇이에요. 은이나 금이나, 동으로 만든 그릇과 달리 질그릇은 쉽게 부서지고 깨지는 그릇이에요. 물론 겉으로도 매우 초라하고 보잘것 없는 그릇이에요. 바울은 사실 인간은 그런 유한하고 연약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흙으로 만들어지고 결국엔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의 존귀함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질그릇에 보배를 담고 있다는 거에요. 여기서 말하는 보배는 예수그리스도, 하나님, 넓게는 복음이라고 볼수 있어요.

여러분, 내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사는 것은 질그릇과 같은 나의 인생에 너무나 값진 보배를 담고 사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이것을 깊이 인식하고 산 사도에요. 사실 바울은 겉으로는 겉으로는 질그릇이 아니라 금그릇같은 사람이에요. 최고의 학문을 공부한 사람이고, 사회적인 지위도 최고의 바리새인이었어요.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는 자신이 질그릇같은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세상의 것을 다 가지고 있는 금그릇이었지만, 그릇안에는 보배가 담겨 있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정말 소중한 것이 담기지 않은 그릇같은 인생을 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는 자신이 금그릇이 아니라 질그릇과 같은 연약한 존재임을 깨달았고, 예수님이라는 보배를 담아 사는 인생임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겉으로 보기에 금그릇에 오물을 담고 사는 인생이 있고, 겉으로 보기에 질그릇이지만 보배를 담고 사는 인생이 있는 거에요. 한국은 최근에도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이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어요. 누구는 어릴 때부터 좋은 부모만나서 고생한번 하지 않고, 좋은 환경에서 자라고, 누구는 태어날때부터 어려운 환경의 부모에게서 태어나 고생하며 자랐다는 거에요. 하지만, 그 안에 무엇을 담고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죠.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은 보배를 질그릇에 가진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의 삶이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또한 질그릇이 깨지기 쉬워요. 조금만 충격을 줘도 금방 금이가고 깨져버립니다. 바로 우리의 모습이죠. 금방 마음이 연약해지고, 믿음이 있는것 같았는데 믿음이 약해지죠. 금방 상처받고, 금방 오해하고, 금방 혈기를 부리기도 하죠. 기도해야하지 하면서 기도도 안하고, 말씀을 묵상해야지 하면서 성경은 보지도 않고… 우리는 너무 약해요. 이럴 때 신앙의 고난이 오고, 유혹이 오고 절망이 오기도 합니다. 그럼 왜 이렇게 연약한 질그릇인 우리에게 보배를 담아 주신 것일까요?

7.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능력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않음을 알게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내가 약하고 부족하고, 초라한 것, 믿음도 없고, 잘 하는 것도 없는 것 같을 때, 스스로 낙심하고 절망할 때가 많아요. 나는 왜 이렇게 약하지?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하지?, 나는 왜 이렇게 잘하는게 없지? 라고 절망하는 거에요. 하지만, 이렇게 질그릇같이 부족한 아에게 보배를 담아주신 것은, 약한 나를 통해서 더 큰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날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8.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바울이 이런 고난을 수 없이 당했습니다.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거꾸러뜨림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고린도성도들에게 간절히 전하고 싶은 것은,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았다는 것, 낙심하지 않았다는 것, 버린바되지 않았고,망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거에요. 여러분, 이런 일을 경험하지 않는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절대 고난 앞에서 낙심하거나 믿음이 흔들리거나 절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럴수 있는 것입니까. 그 비결은 어디에 있습니까.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사방에서 다가오는 고난, 답답한 일, 박해, 핍박을 바울은 일반 사람들과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그건 예수의 죽음, 즉 십자가에서 겪으신 고통을 지금 내 몸에 내 육체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짊어지셨듯이, 나도 십자가를 짊어진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생각할 수록 바울의 삶은 정말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던것 같아요. 사랑하면, 그 사람처럼 살고 싶어 집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사랑하지만,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와 고통을 스스로는 당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고통당하심으로 우리가 생명을 얻는것에 만족합니다. 그 이상 내가 희생하고 비우고 고통당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지금 세상에 많은 부와 영화를 누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이 생명을 버린 것처럼 가진 것을 비울수 있겠냐고 하면 얼마나 그렇게 하겠습니까.. 그저 작은 고난이 와도 원망하기에 바쁘지, 그것을 바울과 같이 예수님의 죽음을 내 몸에 짊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세상을 살면서 사람들이 고생을 합니다. 그러나 그 고생은 다 자기유익을 위한 고생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고생은 주를 위한 고생이에요. 그가 주님을 위한 고생이 아니라면, 왜 이런 고생을 받겠스니까. 바울은 사도가 된 이후로 편한 날이 없었어요. 고후1장9절을 보면, 그 지독한 바울도 살소망이 끊어지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럼 왜 바울이 그 고생을 한 것입니까. 왜 주님을 위하여 고난을 받은 것입니까. 바울은 똑똑한 사람이었어요. 바보가 아니에요. 그저 사라지는 것이라면 그렇게 살지 않았을 거에요. 바울은 이렇게 말해요.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바울안에는 생명과 부활을 믿는 믿음이 확고했기 때문입니다.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늘 죽음에 넘겨지는 것 같은 사도의 삶이었으나, 그 죽음을 이기게 한 것은 생명과 부활을 주실 믿음때문이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신앙을 가기를 축원합니다. 고난과 십자가를 달게 짐으로, 생명과 부활이 영원한 상급으로 주실 것임을 믿는 신앙을 갖기를 바랍니다. 

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13.  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14.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15.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바울안에 있는 분명한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이고, 우리 또한 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유명한 말씀입니다. 생명과 부활을 주실 하나님을 믿기에, 사망과 같은 고난으로 낙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길을 가면서 절대 낙심하면 안됩니다. 바울도 살 소망이 끊어졌으나 낙심하지 않았아요. 겉사람은 낡아집니다. 이 말은 나이가 든다는 의미로도 볼수 있겠지만, 사도들은 많은 고통과 사망의 고통을 지나면서 육신이 많이 약해졌습니다. 매를 맞아 곳곳에 상처가 있었을 거에요. 고난으로 인해 몸이 성치않았어요. 겉사람이 낡아지는 거에요. 그러나, 생명과 부활의 믿음으로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진다고 고백합니다. 고난과 비교할수 없는 은혜가 그 속사람을 새롭게 하는 거에요.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사도 스스로 살 소망이 끊어지는 환난을 당했다고 했는데, 그것이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하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바울의 마음은, 현실의 환난에 갇혀있지 않고, 그의 마음은 언제나 영원을 향해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고백을 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오늘 나는 무엇을 주목하며 살고 있습니까. 보이는 것이지 않습니까. 잠깐 있다 사라지는 보이는 것을 주목하며 살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위대한 사도가 주목한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영원한 보이지 않는 것을 주목하며 살았습니다. 어쩌면 이런 삶은 눈에 보이는 것을 중요시 여기는 세상으로부터 조롱당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의 말은 진리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입니다. 보이는 우리의 인생도 잠깐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영생은 영원한 것입니다. 정말 지혜로운사람이라면 잠깐을 위해서 살지 않고, 영원을 위해서 살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바울의 당부를 본받아, 고난과 십자가를 우리 몸에 짊어지고, 보이지 않지만 영원한 생명을 주실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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