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故 한경직 목사님의 생전 설교 전문을 한경직목사기념사업회 제공으로 매주 한 차례 소개합니다. 한 목사님은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목회자' 1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고인의 생전 설교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늘날 한국교회에 생생히 울려퍼지길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20:4~14
1954년 9월 26일 설교
오늘 아침 최후의 심판에 대하여 잠깐 생각하겠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이와 같이 기록되었습니다. “사람이 한 번 죽고 그 후에 심판받는 것은 정하신 것이니라”인간의 생활이란 확실성 있는 것이 많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오늘날 이와 같이 이 자리에 모여 앉았지만 내일 무슨 일을 당할지 우리는 모르는 것입니다. 명년에 될 일을 우리가 확실히 얘기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인간의 생활이란 불확실한 것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죽는다는 사실, 둘째는 그 후에 심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다 죽을 것은 분명합니다. 또한 죽은 후에 심판이 있을 것이 확실합니다. 거기 분명하지 않은 것이 조금도 없습니다. 이 최후 심판에 대해서는 온 성경이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우리 주님께서 분명히 여러 가지 교훈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여러 사도들이 분명한 글자로써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낼 때가 있겠습니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면양과 산양을 갈라 세울 때가 있겠다고 분명하게 주님께서 가르쳐 주었습니다.
사도행전 17장 31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아덴(아테네)에 가서 전도할 때에 “이제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심판할 날짜를 정하여 두었다”고 선언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 선악간에 그 행한 대로 갚음을 받으리라” 이와 같이 기록되었습니다. 로마서 2장 16절을 보면 “우리의 은밀한 죄가 하나님 앞에 온전히 드러나 고 하나님 앞에 심판받을 날이 있겠다”고 가르쳐 줍니다. 내 양심이 이후에 반드시 내가 행한 모든 일에 대하여 선악간에 보응을 받으리라고 하는 그런 느낌을 우리에게 지적해 줍니다.
그런 까닭으로 사후의 심판은 단순히 기독교에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계시종교(啓示宗敎)가 아닌 이른바 자연종교(自然宗敎), 세계의 다른 종교에서도 흔히 가르칩니다. 사후 심판에 대한 사상은 옛날 유대 사람이나 우리 한국 사람에게도 비록 희미하기는 하지만 그 심판에 대한 사상이 다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시기 여러 천년 전에 있던 헬라(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Plato)이 기록한 책 가운데 헬라의 어떤 군인이 전쟁에 나가서 중상을 당하여 다 죽은 줄 알고 그 시체를 불사르기 위하여 나무를 모아 놓고 그 시체를 그 위에 놓고 방금 불사르려고 할 때 죽은 줄 알았던 그 군인이 다시 소생하여 깨어났다고 하는 그런 기록이 있습니다. 그가 깨어나서 자기가 죽은 줄 알았던 그때의 모든 경험을 말한 것을 거기에 기록했는데, 어떤 말이 기록되었냐 하면 그가 죽어서 어떤 곳에 가니까 두 길이 갈라지더라고 합니다. 그 길 가운데는 심판하는 이가 있어 일생에 모든 행한 일을 따라서 심판을 해서 옳은 생활을 한 사람은 오른편 길 곧 하늘나라로 가는 길로 보내고, 악한 일을 한 사람은 왼편 길로 보내게 되는데 왼편으로 가는 사람마다 높이 플랜카드에다 자기 지은 죄를 크게 쓴 것을 들고 다른 사람이 다 볼 수 있는 큰 글자로 ‘나는 이런 죄를 지어서 지옥으로 갑니다.’라고 쓴 것을 들고 가는 모양을 보았노라고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사후에 대한 심판의 사상은 동서를 물론하고 어떤 민족을 물론하고 그것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양심이 그것을 우리에게 지적하여 주는 까닭입니다.
또한 사후의 심판은 인간의 이성이 지적하여 줍니다. 이치로 생각해 보아도 꼭 그래야 될 것입니다. 그 까닭은 이 우주는 도덕적 우주인데 하나님의 공의가 인간 생활에 있어서 현세에 있어서만 완전히 이루어지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일상생활에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현세에도 있을 때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 다. 우리가 어떤 죄를 지으면 그 죄 때문에 육신의 고통을 받을 수도 있고 어떤 재난을 입을 수도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양심에 고통을 심히 받아서 말하자면 지옥의 형벌을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에 죄 지은 사람이 받는 것이 또한 사실입니다.
또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하나님께서 죄 지은 사람의 자손을 3, 4대까지 형벌하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옳은 사람의 자손은 수천 대까지 복을 빌어 주시겠다는 그런 말씀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죄를 따라서 어떤 민족을 벌하고, 아무리 강한 국가일지라도 도덕이 부패하고 하나님의 정의를 떠날 때에 큰 심판을 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공의는 현세에서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올시다. 그 까닭은 어떤 사람을 완전히 심판하려고 할 것이면 그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는 생명이 끊어질 때까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에 전 기간이 끝나야 그 사람의 생활을 온전히 심판할 수 있는데, 단순히 이 세상에서는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은 그 사람의 전 기간을 심판할 수 없는 까닭에, 또 한 가지는 사람이란 것은 단순히 육신만이 사람이 아니고 그 영혼도 사람인데 육신은 죽고 그 영혼이 살아 있으니까 육신 생활만 가지고도 완전히 그 사람의 생활을 심판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심판하시는 것이 하나님이란 사실을 알리고 자주 심판하시고, 또 최후의 심판이 있을 터이니 이 현세에 서는 모든 일을 다 하시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달을 수 있을 만큼 만 이 세상에서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죽은 후에 심판이 있으리라는 것을 우리 이성으로 생각하여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 세상에 있어서 우리 인간으로서는 완전한 하나님의 공의를 행할래야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 국가에서도 법정에서 죄인을 공의로 공판하려는 것이 국가의 이상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이 세상 법률로는 벌하지 못할 죄를 많이 짓습니다. 모든 심리적 죄, 영적 죄는 인간의 법률로는 벌할 수 없습니다. 교만의 죄, 시기한 죄, 그릇된 죄 이것이 온전히 행동으로 나타날 때에만 어느 정도 제재할 수 있지만 인간 법률로써는 이런 죄들을 공판하려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
또한 죄가 있는 것도 사람은 분명히 알 수가 없으므로 죄 많이 지어서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을 벌하지 못하는 때가 많습니다. 마땅히 잡아서 사형할 사람인데 그 사형 죄수를 붙잡지 못하는 때가 많습니다. 또 오히려 그 반대로 사람을 잘못 잡아서 형벌 안 할 사람을 형벌하는 때도 이 세상 법정에는 종종 있습니다. 또 죄지은 사람을 형벌할 때에도 열 가지 죄를 지었으면 열만큼, 다섯 가지 죄를 지었으면 다섯만큼 꼭 정당하게 우리 인간의 재판장들은 죄를 벌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서양의 재판소 꼭대기에는 어떤 동상을 만들어 놓느냐 하면, 재판장을 만들어 놓고 그 재판장은 저 울대를 쥐고 있어요. 그렇지만 그 재판장의 눈은 수건으로 가렸습니다. 그것은 무슨 뜻인가 하면 재판장도 인간인지라 아무리 저울대를 잡고 꼭 공평하게 모든 일을 하려 하지만 눈은 가려졌어요. 세상 사람은 모든 것을 자세히 볼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공평이란 암만해도 부족하고 불완전하다하는 뜻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이 세상에서는 완전한 공의가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후에 온전히 공의가 이루어지고, 사후에야 최후의 심판이 있는 것 입니다. 이것을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또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은 이 최후의 심판을 하실 분은 또한 누구이신가, 물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지만, 삼위일체 가운데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하시겠다고 이와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겠다고 이와 같이 기록되었습니다.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마지막에 인간의 죄악을 재판할 재판장으로 임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재판장으로 임하시는 것은 가장 적당한 일로 생각합니다. 그 까닭은 그리스도는 우리 인간과 같이 모든 시험을 다 당하여 보셨지만, 죄는 없으신 분입니다. 그는 재판장의 눈에 수건을 가리운 것처럼 사람을 알지 못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을 꿰뚫어 보시는 그리스도입니다. 또한 이 재판장은 조급한 판단을 내릴 분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인생의 모든 슬픔과 모든 고통을 친히 당하셨으므로 얼마든지 동정할 줄 아는 재판장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가 이와 같은 재판장을 모시게 될 것을 생각할 때에 적이 우리 마음 가운데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 다음에 최후 심판에 대하여 성경에 보면 인간들을 심판할 때에 어떻게 어떤 표준을 가지고 심판을 하겠느냐? 요한계시록 20장 12절을 여러분께서 들으셨습니다. 책들을 펴놓았다고 하는 것을 보니까 책이 여러 권입니다. 아마 제 짐작에는 사람마다 각각 책 한 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책 가운데는 우리 인간의 일생의 모든 생각, 모든 말, 모든 행동이 하나도 빠짐없이 변함없이 꼭 사실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얼른 생각할 때에 공부 많이 한 사람이 책을 쓴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소설을 쓰는 사람은 특별히 재주 많은 사람만 소설을 쓴다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 분명히 이 한가지 사실을 아세요. 여러분, 이 세상에서 책을 출판했든지 못했든지 책 한 권을 씁니다. 아세요? 여러분 매일 매일 생활이 그 한 책이 됩니다. 혹 어떤 사람은 자기의 생활을 스스로 써서 자서전을 냅니다. 모든 자서전은 한 소설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정직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의 내면 생활을 꼭 그대로 쓸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여러분께서 이 다음 하늘나라에 갔을 때 책 한 권을 보실텐데 그 책은 여러분이 쓰신 책인데, 그 책 가운데는 여러분이 일생동안 마음 속에 생각한 것, 누구를 미워한 것, 누구를 싫어한 것, 혼자서 무슨 일한 것, 비밀히 무슨 일한 것, 전부 빠짐없는 여러분 자신의 전기를 여러분이 직면할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다 무슨 책을 쓰고 있습니까? 여러분, 어제 토요일에 무슨 책 한 페이지를 썼습니까? 나타나는 행동만이 아닙니다. 은밀한 것까지 다 심판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에게 숨긴 것 그것까지 다 기록되었다고 그랬습니다. 책을 펴 놓는다는 것은 공개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 개인의 모든 사람의 비밀스런 생각, 더러운 모든 행동까지 다른 사람 모르는 것, 내 아내도 모르는 것, 내 부모도 모르는 것을 그 때에는 다 공개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책을 쓰는가? 조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를 정죄하는 사람은 특별히 없겠습니다. 우리가 그 책을 대면하면 그 책 자체가 나를 더욱 정죄할 것입니다. 여러분, 그 책을 다 공개해서 펴놓게 될 때에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을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솔직히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 책만 있다고 할 것이면 구원 얻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 책만 있는 것이 아니고 또 다른 책이 있는데 그 책은 무슨 책이냐 하면 생명책이라 했습니다. 이 생명책은 한 권입니다. 여러 권 아닙니다. 다른 책 한 권이 그 앞에 또한 있겠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우리의 지식으로 얻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무슨 좋은 일을 함으로 얻을 수 있는 것 아닙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생활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 아닙니다. 세상 사람 보기에 선하다고 하는 사람, 세상 사람 보기에 도덕적 인물이라고 하는 사람, 세상 사람 보기에 군자라고 하는 사람 다 하나님 앞에서 볼 때에 더러운 인간입니다. 그 사람의 책에도 더러운 것이 많이 있습니다.
이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구 원하시기 위하여 이렇게 하나님의 온전한 공의 아래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생명의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로 하여금 모든 인간의 죄를 지게 해서 대신 형벌을 받게 했습니다. 아무리 죄가 많지만, 그를 믿고 죄를 회개하는 사람은 죄를 용서해 주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이 모든 더러운 죄를 지우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생명책에 기록한 것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습니다. 이 다음에 하늘나라에 가서 핑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 얻을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네가 이 길을 걸었느냐, 안 걸었느냐 이것으로써 생명책에 우리의 이름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작정된 것입니다.
그러면 행한 대로 심판받는다는 것은 무슨 말이냐? 그 뜻도 또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 얻는 것은 이렇게 믿음으로 구원얻지만, 하늘나라에 가서 상을 더 받는 것은 우리가 믿은 후에 하나님의 일을 얼마나 더 부지런히 하고 얼마나 더 충성하고 얼마나 더 장성했는지 거기에 따라서 그 행위를 따라서 우리가 상을 더 받기도 하고 덜 받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 한 사람은 누구나 다 멸망을 받는데, 지옥에 가서 형벌을 받는데도 등급이 있습니다. 악한 일을 더 많이 한 사람은 더 큰 형벌을 받고 적게 한 사람은 적게 받겠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틴 루터가 어거스틴 수도원에 있을 때 한 번은 꿈을 꾸니까 시험하는 자가 나타나서 루터에게 책을 펴 보입니다. 그 책을 보니까 거기에는 자기의 지은 죄 곧 아이 때부터 젊었을 때까지 지은 죄가 전부 기록되었습니다. 그 때에 그 책을 가진 사람이 루터에게 묻기를 “이것이 사실이냐?” 물었습니다. 거짓말할 수 없어서 “예, 사실입니다.” 했더니 그 다음 하는 말이 “네가 이런 더러운 죄를 짓고 구원 얻겠단 말이냐?” 그 말을 들을 때 기가 막히고 낙심되었습니다. 그 때에 위로부터 음성이 들리는데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의 죄를 깨끗이 씻었느니라.” 이 말씀이 들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사탄에게 하는 말이 그 죄를 지우고 그리스 도의 보혈이 우리의 죄를 깨끗게 한다고 기록하라고 말할 때에 사탄이 물러갔다고 합니다.
구원을 얻는 길은 오직 십자가의 보혈을 믿고 그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는 길밖에 다른 것이 없습니다. 다니엘 웨스터라는 미국의 유명한 정치가요 학자가 있습니다. 이 분이 한 번은 국무장관으로 있을 때 된 일인데, 뉴욕 어떤 호텔에서 저명한 사람 약 20명과 같이 저녁을 먹을 때, 저녁을 다 먹고 다른 사람들은 이런 저런 이야기하는데 머리를 숙이고 가만히 앉았어 요. 그러자 그 옆에 있던 친구가 묻기를 “여보, 웨스터씨, 당신의 일생을 통해서 당신의 마음 가운데 제일 중요한 생각은 무엇이라 말할 수 있습니까?”하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조금 있다가 얼굴을 들고 대답하는 말이 “나에게 들어온 생각 가운데 나에게 제일 엄숙하고 중요한 생각은 내가 지금 하는 모든 일을 이 다음에 내가 하늘나라에 가서 내가 책임질 것이라고 생각할 때에 내 마음이 제일 엄숙해집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하는 생각, 내가 하는 말, 내가 하는 행동, 학생이면 학생으로 행한 모든 것, 선생이면 선생으로서 행한 모든 것, 장관이면 장관으로서 행한 모든 것, 국회의원이면 국회의원으로서 행한 모든 것, 대통령이면 대통령으로서 행한 모든 것, 목사면 목사로서 행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주님이시여! 지금 저희들이 최후 심판에 대하여 잠깐 생각하였사옵나이다. 이 부족한 죄인이 이 진리를 말할 때 잘못된 것 있으면 용서해 주시고, 우리 생각에서도 말해 주시고 주님의 뜻 대로 말씀한 것만을 우리 마음 속에 깊이 새겨 주어서 우리가 매일 매일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다 주님 책에 기록되어서 이 기록에 대하여 우리가 다 책임을 질 것을 미리 분명히 깨달아 삼가 조심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옵고 원합니다. 여기 이 말씀을 듣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도 그 심판대 앞에서 정죄를 받는 사람이 없게 하여 주옵소서. 구 원의 큰 길을 하나님께서 열어 주셨사오니 아직도 그 길로 들어오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이 시간에 그 마음을 성령으로 감화시켜 주어서 주님께서 열어 주신 이 구원의 길로 들어올 수 있게 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옵고 원하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종교신문1위 크리스천투데이 기사 -->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29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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