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4월 9일 故 한경직 목사
갈라디아서 6:14
1982년 4월 9일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우리가 다시 한 번 여기에 있는 말씀을 잠깐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대개는 조금은 설명을 해야 아마 알기 쉬울 거예요. 이 관은 여러분 아시는 대로 사도 바울이 쓴 편지의 한 절이올시다. 이 갈라디아서 안에는 우리 기독교의 중심 진리가 되는 우리 인간이 내 힘으로 도무지 구원을 얻을 수 없고, 죄 사함을 받을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얻는다고 하는 진리를 죽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도 이 진리를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또 그 당시에는 어떤 이들은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여러 가지로 육체로 자랑하던 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뜻은 그 당시에 유대 사람들 가운데 가령, 유대 사람들은 지금도 그렇다 할 수 있지만,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다"하며 그 문벌, 그 혈통, 이런 것을 자랑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또 그 사람들은 "우리는 어려서 나서부터 할례를 받았다."
그때 이방 사람들은 그런 할례 받는 것이 없었어요. 아브라함의 자손, 이스라엘 사람만 할례를 받는 풍속이 있었어요. 특별히 남자들, "난지 8일 만에 우린할례를 받은 사람이다." 또 "우리는 옛날로부터 모세의 율법을 잘 알고 모세의 율법대로 산다"고 자랑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나이 많다고 해서 앉아서 얘기하라고 하네요. 용서하세요. 지금 물론 설교할 때 흔히들 일어서서 설교하지만 사실은 꼭 설교를 일어서서 해야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태복음 5장 첫 절을 기억하는지는 모르지만, 마태복음 5장, 그 5장에 무슨 말이 있는고 하니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서 가르치신 그 유명한 설교, 그것을 산상보훈이라고 그러죠. 산상보훈이라고 하는데 그 산상보훈을 기록할 때 마태복음 5장 첫 절을 보면 어떻게 기록했습니까? 누가 한 번 읽어 보겠습니까?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거기에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 어떻게 했다고 했어요?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오거늘 입을 열어 가르치셨다" 그랬어요. 이 설교인데요, 산상보훈은 앉아서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나이 많다고 특별히 앉아서 얘기하라고 하는데 뭐 이상스럽게 생각하지 마세요. 이제 얘길 계속 하십시다.
그래서 그때에 믿는다 하긴 하지만 유대 사람들 가운데 예수를 믿기는 믿으면서도 그런 것을 육체에 관한 것을 늘 자랑을 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런 아브라함의 자손의 미덕을 처음부터 우리가 잘 지키는 사람들이고 그러니까 이런 조상이 없는 이방 사람들보다는 우리가 낫다'하는 이런 교만한 마음을 좀 가지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그 당시에 많이 있었어요.
그런 상황 아래에서 여기 사도 바울이 "우리가 구원 얻는 길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서 얻는 것도 아니고,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을 수도 없고, 오직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십자가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씁접할 때에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는다"하는 그 진리를 갈라디아서에 죽 기록했어요. 한 번 가서 읽어 보시면 더 잘 아실거예요.
그리고서는 이걸 마지막에 말씀하셨어요. 또 여기에 보면, 11절에 보면, "내 손"이라고 했지요? 그것을 보면 사도바울이 편지를 쓸 때에 자기가 쓴 것이 아니고, 자기가 구술로 하고 입으로 불러주고 그 자기를 도와준 청년이 다 썼어요. 그러나 다 쓴 다음에 마지막 몇 자는 자기 손으로 친히 썼어요. 친필로. 이것은 친필로 쓴 부분이에요. 쓴 마지막 결론에 하는 말은 언제나 꼭 중요한 말을 다시 반복해 주었어요.
이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여러 가지 자랑하지만 나는 그런 것 자랑할 것 하나도 없다. 나는 자랑할 것 하나도 없다"라는 거예요. 사실은 사도 바울도 그런 것 자랑하려면 자랑할 것 있지. 그이가 아브라함의 자손, 그이가 베냐민 지파, 그이가 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아. 그이가 열심히 율법을 가말리아의 문하에서 배웠고, 뭐 율법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아는, 다시 말하면 자기도 자랑을 한다면 이 세상의 그런 것까지도 자랑할 수 있다는 말이오.
그러나 여기는 말합니다. "나는 이런 것들까지도 자랑할 것 하나도 없다. 내게는 이런 자랑은 도무지 없다." 그러면서 얘기하는 말이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 내가 자랑할 수 있다면 십자가밖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서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그것은 내가 예수와 십자가를 안다면 세상이 내게 대해서 십자가에 못박혔다, 다시 말하면, "나는 세상에 대해서 죽은 사람이다." 그런 말이에요. 세상 것 나는 자랑할 것이 없다. 그리고 그 다음 말도 같은 말이에요.
또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나는 사실이 세상에 대해서는 또 죽은 사람이야. 세상이 나한테 와서 구할 것은 없다." 다시 말하면 "내게는 자랑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 없다"라고 하는 말이에요. 그래도 문벌을 자랑할 수 있지요. 그래도 자기의 지식을 자랑할 수 있지요. 자기의 재능을 자랑할 수 있지요. 그러나 내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어요. 왜? 그 이유를 내가 말한 대로 이 갈라디아서, 또 로마서에 죽 기록했습니다.
오늘은 참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 십자가를 우리 마음 속에 묵상하면서 신령한 눈으로 그려 보는 그러한 날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는가? 어찌해서 사도 바울이 자기에게는 십자가밖에는 세상에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는가? 그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유가 있다는 말입니다.
자, 첫째는, 사도 바울이 십자가를 바라볼 때에 그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물론 여러 가지 방면에 나타나지요. 꽃동산의 꽃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지요. 우리 누구나 살 수 있게 오곡백과를 주시고, 여러 가지 산천 초목을 주시고, 여러 가지 축복해 주시는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그 돋아나는 사랑의 결정이 어디보다도 분명하게 나타나는 곳은 십자가인 것을 사도 바울은 깨달았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깊이 깨달아서 온전히 깨달음을 얻게 되면 이 죄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 없어진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불교라는 데는 특별히 깨달음을 많이 강조하는데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내 자신을 바로 깨달을수록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누구나 깨닫게 됩니다.
사실 이 죄의 문제는 인간 스스로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이 죄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시고 도덕의 법칙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연을 지으시고 자연의 법칙을 주셨습니다. 자연의 법칙을 어기면 자연히 우리가 형벌을 받습니다. 꼭 마찬가지로 도덕의 법칙을어길 때 우리가 다 도덕의 형벌을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도덕의 법칙을 어기지 않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인간이 어떻게 스스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을 수가 있는가? 이 문제는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어 죄 없는 그리스도께서 많은 사람의 죄를 대신해서 자기가 죽으셨습니다. 이것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었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동시에 십자가에 나타났습니다.
그러기에 십자가 회개인데 그 위로 내려오는 것은 참 말하자면 하나님의 사랑, 또 하나 건너가면 만민을 다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를 통해서 이 세상에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나고 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나타나는 곳에 그 십자가를 믿음으로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죄 사함을 주십니다. 그 영혼을 구하여 주시는 그 진리가 곧 십자가의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의 여기에서의 말씀이 "이 세상 사람들은 이런 것도 자랑하고 저런 것도 자랑하지만 내게는 자랑할 것은 십자가밖에 없다." 하셨습니다. 나를 구원하는 것은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나에게 영원히 사는 생명을 주시는 분은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밖에는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여기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렘브란트라고 하는 유명한 예술 화가가 있어요. 그림 잘 그리는데요. 렘브란트 그림이 많이 있죠. 한국에도 전해졌죠. 십자가에 못 박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을 그렸어요. 그런데 그때 여러 군인들이 못박지 않았습니까? 군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십자가에 못박았는데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는 군인들 가운데 자세히 보면 자기의 얼굴을 그렸습니다. 하나는 자기의 얼굴을 그렸습니다. 그것에서 이 렘브란트의 신앙이 얼마나 독실하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찾아볼 수가 있어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은 어떤 특정인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이 아니에요. 옛날 사람만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것이 아니야. 오고 오는 죄인, 죄 짓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결국은 모든 사람의 죄가 모아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그 죄인 가운데 하나를 자기를 그렸습니다. 자기 얼굴. 내 죄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십자가에 고난 당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사실 우리가 이 진리를 깊이 깨달을 때에 우리가 참 믿기는 믿는다 하면서도 죄를 짓게 되면 주님을 십자가에 한 번 더 못박는 겁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알게 될 때에 참 죄를 멀리할 수밖에 없고, 이 진리를 참으로 알게 될 때에 사도 바울과 같이 너무 감격해서 십자가밖에는 자랑할 것이 없어져요.
옛날, 이제 지난 19세기에 '스텐벅'이라고 하는 독일의 유명한 예술가가 있는데 그분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그렸어요. 십자가의 못을 그린 그 유명한 그림이 있습니다. 그 그림이 구텐베르그라고 하는 독일의 유명한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데, 이러한 후에, 한 세기 전, 한 세기 반 전쯤 된 후에 그때에 독일의 어떤 귀족의 아들이, 백작이 구텐베르그 박물관에 가서 이런 그림, 저런 그림 보다가 한 편 구석에 가니까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림이 있었어요. 그가 그 그림을 볼 때에 참 이상한 느낌이 마음 속에 들어와, 성령의 감화죠. 마음 속에 들어와서 오래 그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 아래에는 "나는 너를 위해서 피 흘려 죽었건만, 너는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하느냐?"하는 관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였어요. 젊은 사람이 그 이름이 진젠돌프라고 하는 젊은 백작이 그 십자가를 가만히 바라보고는, '예수님은 왜 죽었을까? 만민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을까?' 그는 예수님이 '내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것이 아닌가?' 그는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이런 고통을 받으셨는가? 이런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셨는가? 주님이 나를 위해서 내 죄를 사해 주시려고 나를 구원하시려고 이런 고난을 당하셨는가? 주님의 고난으로 말미암아서 구원을 받은 나, 나는 주님을 위해서 지금까지 무얼했나?' 그리 생각했어요.
'주님은 나를 위해서 자기의 생명까지 바쳤는데 나는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했나? 내가 이 다음에 하늘나라에 가서 예수님을 만날 때 내가 주님 앞에 무얼 내놓나?' 이때에 이 젊은 백작이 그 그림 아래 꿇어앉아서 새롭게 자기 과거의 모든 죄를 찾았어요.
"내가 지금까지는 주님의 이런 사랑을 알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 깨달았습니다. 내 남은 여생을 오직 주님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그 십자가 그림 아래에서 하나님과 약속을 하고 그 다음부터는 참 열심히 예수를 믿기 시작하고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고 또 공부할수록 깊은 진리를 깨달아 '내가 어떻든지 주님의 이 사랑, 십자가의 사랑에 보답해야 되겠다'는 그런 생각 가운데서 자기 있는 재산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다 구제하고 도와주고 자기는 힘들게 살고, 그래도 오히려 부족해서 '내가 안 되겠다. 내가 젊은 삶을 주님을 위해서 살겠다.' 이런 결심을 가지고 복음 전파를 시작했습니다.
그리해서 그때 뭐 자세한 얘기는 할 것 없지만, 그때 이제 구라파에 전쟁이 있어서 피난민들 많고 이럴 땐데, 피난민 중심으로 이 분이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을 해서 큰 교회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교회를 모라비아 교회라고 합니다. 모라비아 교회라고 하는데, 이 모라비아 교회는 이 진젠돌프 백작으로 말미암아 세움을 받았고, 이 진젠돌프의 십자가 중심의 신앙으로써 '우리가 이 사랑을 온 천하에 전파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와서 영혼을 구원하게 해야 되겠다.' 해서 이 전도 많이 하는 교회가, 아마 19세기에는 세계 어느 교파보다도 전도를 많이 하는 그런 교파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내일 모레가 부활절인데, 이 부활절을 당해서 이 수난주간과 부활절을 당해서 사실 우리가 내 자신에 대해서 인생에 대해서 깊이 생각할 때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진젠돌프처럼 내 자리를 살펴보는 때, 또 인생이 무엇인가 하는 인생 문제도 깊이 생각하는 때가 바로 이런 때입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육신으로 늘 살 존재는 아닙니다. 육신으로 볼 때에 인간의 최후는 무덤에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인생의 깊은 문제를 우리가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이런 문제는 사람의 무슨 생각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보내신 그리스도를 알아야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하여금 죽어도 살 수 있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어떠한 일을 하셨는지 십자가의 뜻도 우리가 좀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인생의 문제를 다루어야 십자가의 문제를 다루는 것과 같이 '내가 앞으로의 내 삶을 어떻게 살고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에 남기고 갈 것은 무엇인가?'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인생의 깊은 문제를 생각해서 참 우리들은 사도 바울과 같이 십자가를 자랑하고, 십자가를 전파하고, 십자가를 위해서 살고, 이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해서 우리 온 동포들이 참 죄에서 나와서 죄 사함 받고 새로운 사람이 되도록 우리의 최선을 다해야 될 것 아니에요?
우리가 지금 참 제5공화국을 건설해 놓고,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가 새로운 나라가 되고,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가 자손만대까지 축복을 받을만한 나라가 될 수 있게 하겠나? 끝까지 노력하는 중에, 종교인은 종교인으로, 경제인은 경제인으로, 문화인은 문화인으로, 언론인은 언론인으로, 각 방면에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재능대로 나라를 위해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그 여러 가지가 다 필요한 가운데 그 가운데서 제일 중심 되는 것은 우리 민족이 근본적으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참 요샛말로 정신 혁명이 필요해요. 도덕의 혁명이 필요해요. 어떻게 하면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나? 이것 단순히 수양만이 필요한 것도 아니요, 도덕 혁명이 훈화를 통해서 되는 것이 아니에요. 근본적으로 인간이 모순을 깨닫고, 자기의 죄를 깨닫고, 내가 이 죄를 사함을 받고 영원한 삶을 얻을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 이것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결국은 우리 사회가 좀 더 깨끗해지고 모든 것이 좀 더 살만한 삶이 되는 것이에요.
오늘 이 수난주간과 부활주간을 당해서 십자가를 좀 더 명상하고 진젠돌프처럼 '주님은 나를 위해서 이렇게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셨는데 나는 주를 위해서 무엇을 할까? 어떻게 살까?' 이점을 깊이 생각하면서 후회가 없는 주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내일 모레 부활절을 당하겠지만, 사실 이 진리를 깨닫고 십자가 아래에서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은 그때부터 이미 영원한 생명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영생'이라는 말이 종종 있는데 영생이라는 말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영생이라는 뜻은 관자와 똑같이 '길이 산다' 하는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우리의 영혼 구원을 얻으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과 같이 우리의 생명이 영원히 부활해서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그 뜻이 있고, 또 영생하는 뜻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생명'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영생하시는 분은 이 우주에 하나님밖에 없으니까, 하나님이 가진 생명을 우리가 가지는 것인데 그 뜻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생활과 같은 거룩하고, 깨끗하고, 참되고, 아름다운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으로 예수를 믿고 예수를 내 구주로 영접해야 되는 그 시간부터 영생을 얻습니다. 그 뜻은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서 하나님의 삶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언제 세상을 떠날는지 모릅니다. 떠나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 말씀과 같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 생전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얻게 됩니다.
이러한 영원한 생명을 얻고 살때에 우리의 삶은 의식이 있고 우리는 진실히 살 수 있고 영원히 살 수 있고, 어떠한 일을 만날지라도 기쁨으로 화평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번 수난주간과 부활의 계절에 우리 모두 새로운 은혜 속에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기도합시다.
사랑의 근본이 되셔서 이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까지 보내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수난주간을 바로 맞이하기 위해서 아버지 사랑하시는 우리 영락의 일꾼의 식구들이 사랑하는 가정의 머리 위에 드렸습니다. 지금 저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그 교훈을 생각했습니다.
아버지시여, 이제 간절히 기도하나이다. 성령께서 우리 각 사람 마음 속에 임재하셔서 우리의 신령한 눈을 열어주시고 멀리 골고다 산상에 그 푸른 언덕 위에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십자가를 통하여서 나타나신 하나님의 사랑을 좀 더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 뜻도 좀 더 분명히 알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만군의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같이 나타나는 십자가의 깊은 뜻도 좀 더 깨달을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 주님의 십자가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인가 이 시간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이 내 죄로 인해서 내가 죽을 것을 대신 죽으시고 내가 피 흘릴 것을 대신 피 흘리신 깊은 십자가의 뜻도 분명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저희들을 위해서 이런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저희들이 이런 진리를 깨닫고 이 세상 남은 삶을 가질 때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또 남은 여생을 주님을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되겠다고 하는 이 깊은 뜻도 좀더 깨달을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길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또 하나님 아버지시여, 이 자리를 통하여 아버지 사랑하는 자녀들을 그 머리 위에 일일이 축복의 손을 얹어 주시옵소서. 그 심령의 상태에 따라서 필요한 모든 물질을 이 시간 위로부터 내려 주시옵소서. 오 하나님 아버지! 마음 속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으신 분 혹 있습니까?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그 짐을 벗겨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무슨 근심이 있으신 마음 품고 오신 분 있습니까? 그 짐도 십자가 앞에서 다 내려놓고 오직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께 다 드릴수 있는 이 귀한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 인간은 약합니다. 우리 인간은 아버지의 도움이 없이 슬픔 많고 괴로움 많은 이 세상을 용감히 살아가기가 힘듭니다. 오 하나님 아버지시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을 당하셨는데 나는 무엇을 하는가? 이런 점도 깊이 생각하는 가운데서 앞으로 우리들이 삶을 깨달아 주님과 가까이 살게 해 주시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다른 사람들 봉사하고 돕고 어떻든지 이 사회와 국가를 위해서 헌신 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성령께서 우리 각 사람 마음 속에 임재하시길 기도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 속에 성령의 열매가 되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모든 덕이 축복의 나눔 속에 넘치게 해 주시고 그리해서 이 세상 살아갈 때에 주 원하시는 대로 빛이 되고 소금이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혹 한 분이라도 특별한 염원이 있으면 모든 염원을 하나님께서 이 시간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을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사흘 만에 부활해서 영원히 하늘나라에서 살아 계시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종교신문1위 크리스천투데이 기사 -->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2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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