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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계 명설교

[이수영 목사 설교] 의와 고난과 복

by 크리스천투데이 일본지사 2023.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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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3년 1월 13일
본문: 베드로전서 3:13~17
설교: 이수영 목사
제목: 의와 고난과 복

 

새해가 되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일 것입니다. 새해가 벌써 열흘도 더 지났지만 새해 들어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는 아직도 서로 복을 비는 인사를 주고받습니다. 서로 복을 빌거나 덕담을 나누거나 인사를 주고받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좋게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이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해야 할지에 관해 중요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우선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서로를 대하는 도리를 말하고, 뒤에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적대적인 사람들을 대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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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는 먼저 본문 8절에서 쓰기를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라” 합니다. 베드로는 여기서 그리스도인들 간의 관계를 바르게 유지하기 위해 요구되는 덕목 다섯 가지를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같이함”과 “동정”과 “형제사랑”과 “불쌍히 여김”과 “겸손”입니다. “마음을 같이함”은 마음의 조화를 이룰 줄 아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마음이 다 같을 수는 없습니다. 마음을 같이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꼭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같은 목표를 가짐으로써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조화로운 삶을 살려고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동정”은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그를 이해하며 그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려고 할 줄 아는 것입니다. “형제사랑”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되 자기의 형제나 자매를 사랑하듯이 하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김”은 다른 말로는 부드러운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즉 남의 어려운 사정을 섬세하게 이해할 줄 알며 돌볼 줄 아는 것입니다. “겸손”은 진심으로 남을 칭찬해줄 줄 알고 남의 성공을 함께 기뻐할 줄 아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서로서로 이러한 마음가짐을 갖는다면 인간관계는 어긋날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누구나 아낌없이 무한대로 복을 빌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그런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는 교회 안에도,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복을 빌어주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는 바로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과는 달라야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 9절을 봅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복을 이어받는다”는 말은 복을 유업으로 받는다, 즉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복을 누린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흔히 하는 일이겠지만 하나님나라에서 영원한 복을 누릴 백성은 세상에서 자기들에게 악을 행하고 욕을 하는 사람들에게 도리어 복을 비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쓰고 난 베드로는 그것이 이미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라고 하며 시편 34편의 일부를 인용합니다. 본문 10-12절에서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본문 10-12절) 한 말씀입니다. 10절에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한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영원히 복된 삶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복된 삶을 원하는 사람이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본문 10-11절) 합니다. 다시 말하면 언행을 선하게 하고, 화평을 추구하며, 화평을 유지하려고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혹 그렇게 한다고 누가 알아주기나 할 것이며, 그렇게 하다가는 손해만 보지 않겠는가, 그리고 악한 자들은 여전히 변함없을 것 아닌가 염려에 대해서는 시편기자는 이렇게 답하고 있습니다. 본문 12절입니다: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의인과 악인을 다 보고 계시고 의인의 간구에 귀 기울이시고 계시기 때문에 염려할 것 없다는 말씀입니다.

 

베드로전서는 박해 받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 사이에서 서로 어떻게 행해야 할지뿐 아니라 그들에 대한 세상의 적대감과 박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 13절에 보면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합니다. 여기서 선을 행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겠습니까? 본문 10-11절에서 권면하는 대로 언행을 선하게 하고, 화평을 추구하며, 화평을 유지하려고 힘쓰는 것입니다.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겠는가?” 한 것은 우리가 정말 열심히 선을 행하기만 하면 우리가 두려워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기도 하고, 세상으로부터 공격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열심히 선을 행해야 할 것을 권면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선을 행한다고 해서 우리에게 아무 어려운 일이 닥치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선을 행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적대적인 공격을 초래합니다. 바른 말을 하는 사람에게 오히려 화를 내는 것이 이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악하기 때문에 선을 미워하고 적대시하는 것입니다. 진리와 선을 싫어하는 것이 악한 세상입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5:10-12). 바로 주님의 이 말씀을 베드로는 본문 14절에서 상기시키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라.” 한 것입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으면 복이 있으며 하늘에서 상이 클 것”이라는 주님의 약속에 힘입어 두려워하거나 근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며,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우리 생각을 지배하게 하지 말고,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뜻으로 베드로는 뒤따르는 15절에서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라” 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확고히 계시다면 세상 사람들이 “도대체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가 무엇이냐?” 물을 때 우리의 대답은 늘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대답은 간단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에게 마음을 온전히 드린 이들은 그 믿음과 소망의 증거가 온유함과 두려움 가운데 드러나야 한다고 베드로는 말합니다. 본문 15절 말씀 전체를 다시 봅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온유”는 사람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말하며, “두려움”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자세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온유는 강한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힘입니다. 진정 강한 사람만이 온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확실히 계실 때 우리는 진정 강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확실히 계실 때 우리는 진정 온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온유하지 않은 사람은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모시지 못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경외의 증거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향한 우리의 모든 증언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말씀에 순종함을 통하여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대한 참된 경외도 없고 그의 말씀에 대한 전적인 순종도 없으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갖는다고 아무리 말해봐야 설득력이 없습니다.

 

베드로는 또 본문 16절에서 쓰기를 “선한 양심을 가지라” 합니다. 기독교는 마음의 종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겉으로 나타난 말과 행동만을 보지 않고 그 마음의 동기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기독교신앙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선한 행실과 함께 선한 양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한 양심”으로부터 나와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선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본문 16절) 합니다. 이것은 이유 없이, 부당하게 우리를 핍박하는 이 세상에 대한 우리의 궁극적 승리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은 그 비방하는 일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또한 그 어떤 환난과 핍박과 고난 가운데서도 우리가 소망을 버리지 않아야 할 이유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모든 말씀을 요약하며 본문 1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사실은 악을 행하고 받는 것은 고난은 고난도 아니고 박해는 더더욱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은 악한 세상에서나 있는 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른 뜻, 더 큰 뜻과 선한 계획이 있으셔서 우리에게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을 일시적으로 내버려 두실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뜻에 우리는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기독교에 대하여 호의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잘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세상이 갈수록 악해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우리가 이 악한 세상에 무엇으로 맞서 싸워야 할 것인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열심으로 선을 행해야 합니다. 고난을 받으면서도 의를 행해야 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며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근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오직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야 합니다. 모든 일을 그리스도 안에서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행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언행을 항상 선하게 하고 언제 어디서나 끊임없이 화평을 추구하며 화평을 유지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를 욕하고 비방하는 자들이 결국은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면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믿음의 증표입니다. 열심히 선을 행하면 그 누구도 결코 우리를 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일시적으로 해를 입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우리를 해하는 자들의 죄가 드러나기 위한 것이며 그런 자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기 위한 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일시적이고 작은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를 욕하며 비방하는 자들을 두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열심히 선을 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많은 선행을 하고도 칭찬은 적게 받습니다. 그런데 잘못은 작게 하고도 큰 욕을 먹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잘못한 일이 있어서 많은 욕을 먹었으면 이제는 더 이상 잘못해서 욕과 비방을 듣지는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욕을 먹어도 선을 행하고 욕을 먹어야 합니다. 이 세상으로부터 욕먹고 비방을 듣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잘못을 해서 욕을 먹어서는 안 되고 오히려 선을 행함으로써 욕을 먹어야 할 것입니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흔히 무엇인가 바뀌고 형편이 좋아지리라는 기대를 갖습니다. 대통령이 바뀌고 정권이 바뀌면 특히 더 큰 기대를 걸어보는 것이 사람들의 심리입니다. 그런데 냉정히 내다보면 금년뿐 아니라 당분간은 경제, 정치, 외교, 국방 등 여러 면에서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들을 합니다. 위기의 때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어딘가에서 소망을 찾기를 원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교회가 이러저러한 일로 인하여 이 세상의 소망이 되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제는, 특히 이 위기의 때에는 온 국민에게 위로가 되고 희망을 주는 교회로 거듭나야 합니다. 이 땅의 모든 교회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제는 세상의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소망을 안겨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소망의 이유를 묻는 모든 이들에게 우리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해가 우리에게 복되고 다른 많은 사람들 또한 우리에게서 소망을 발견함으로써 복된 한 해가 되게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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