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12년 3월 4일
본문: 고린도전서 1:18~25
설교: 이수영 목사
제목: 하나님의 능력인 십자가의 도
오늘 본문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말은 <십자가의 도>입니다. <십자가의 도>란 그 의미가 대단히 응축된 말입니다. 그것은 달리 표현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주어진 구원의 진리란 말입니다. 조금 더 길게 설명하자면 <십자가의 도>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그 죄 값으로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자신의 아들을 사람의 모양으로 이 세상에 보내시고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고난과 죽음을 당하게 하심으로써 우리의 모든 죄를 씻으시고 그를 믿는 믿음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으며 멸망치 않게 하셨다는 말씀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의 도>는 인간의 사고로는 이해되기가 어려운 말입니다. 말도 되지 않는 것이고 웃기는 말로 여겨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믿는 사람들은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들 취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랬고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으로 세상에 내려와서 산다는 것이나,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다는 말이나, 한 사람이 십자가에 달려 죽었는데 그것이 모든 사람의 모든 죄를 다 씻을 수 있다는 주장이나, 그것을 믿기만 하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누린다는 가르침이나 처음부터 끝까지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릴 뿐이고 그런 것을 믿는 자들은 전부 정신이 나간 자들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할 만합니다. 예수님은 나사렛 마을의 평범한 목수의 아들이었습니다. 또 십자가는 아주 흉악한 범죄자나 도무지 길들일 수 없는 노예나 로마의 황제 또는 제국에 대해 반역죄를 저지른 자들에게 주어지는 가장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형벌이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처형된 한 나사렛 청년의 죽음이 어떻게 온 인류를 구원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 하나 구원하지 못한 자를 온 인류의 구원자로 믿으라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반문하며 항변할 수 있습니다.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고 특별히 지혜가 없는 사람 중에도 그런 것을 믿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반론은 옛날 사도 바울 때나 있었던 것이 아니고 오늘날도 있으며 언제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그가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와 꼭 같은 조건으로 사셨으며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당하셔서 우리의 죄를 다 씻으셨으며 우리는 그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고 영생을 누릴 수 있다는 이 <십자가의 도>를 확신하며 그 진리에 목숨을 거는 우리는 다 미련하고 모자란 사람들이며 정신 나간 사람들이겠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서 그런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해 답하고 있습니다. 본문 18절에서 그는 쓰기를 “십자가의 도가 ...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의해 구원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믿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본문 24절에서도 바울은 말하기를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에로 택하시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믿음에로 부르셔서 하나님의 백성 되게 하신 이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스스로 믿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믿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도 없으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이해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지렁이가 우리 인간의 사고를 이해할 수 없는 것보다도 더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렁이와 우리 인간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에도 불구하고 피조물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뛰어넘을 수 없는 무한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큰 지혜를 지녔다 할지라도 스스로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이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주시고 드러내시는 대로 알게 해주시는 하나님 자신의 계시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십자가의 도>를 믿고 안 믿고 하는 것은 세상에서 말하는 지혜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구원에로 부르셨냐 아니냐에 달린 문제라는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 안에 있지 않으면 세상의 지혜는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은혜 안에 있으면 특별한 지혜가 없는 사람도 오묘한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같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세상적인 지혜가 많은 사람이나 적은 사람을 각각 어떻게 하나님께서 쓰실 지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지혜에 달린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 사람들의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사고를 완전히 뒤엎어놓는 것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세상이 자랑하는 지혜를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앞에서 사람의 지혜는 그저 무력할 뿐임을 밝힌 것이 사도 바울이 말하는 <십자가의 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가 힘주어 말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18절에서는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합니다. <십자가의 도>를 미련한 것이라 말하는 자들은 멸망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19절에서는 하나님께서는 이미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셨다고 말합니다. 20절에서는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되묻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지혜 있다, 율법을 잘 안다, 설득력 있게 말할 수 있다 하며 <십자가의 도>를 부인하거나 미련한 것이라 할 자는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이 다 미련하고 무지한 자로 밝혀지며 입이 닫히고 말 것이라는 말입니다. 21절에서는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합니다. 세상에서 지혜가 있다 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알 수도 없으면서 그의 <십자가의 도>를 미련한 것이라 말하며 믿지 않고 멸망의 길을 가지만,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지혜가 이해할 수 없는 <십자가의 도>를 당신께서 기뻐하시는 이들에게 믿게 하시며 구원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22-24절에서는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합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자기들의 합리적 사고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인정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행하신 놀라운 구원의 사건들 같은 눈에 보이는 표적을 보고야 믿겠다는 합리주의에 빠져있었습니다. 헬라인들은 보이지 않는 원리에 대한 심오한 통찰과 논리적인 설명이 아니고서는 아무 것도 믿지 않으려는 합리주의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런 자들 모두에게 나약하게 붙잡혀 처참하고 수치스럽기 그지없는 십자가 형을 받고 죽은 자가 모든 사람을 구원한다는 주장은 허황된 이야기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거기에 다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능력이고 지혜인 줄 알 턱이 없어 그의 이름을 부르거나 전하는 자들을 적대하며 미련하다 하며 그 돌 뿌리에 걸린 것입니다. 어떻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구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왜 하필 그런 방식으로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지혜에 속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을 지혜로운 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까? 그것도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그런 오묘한 진리를 미련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것도 지혜의 영이신 성령의 역사입니다. 사람의 지혜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소리 높여 외친 <십자가의 도>입니다.
우리가 확고하게 믿는 모든 것이 사실은 보통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경이 증언하며 가르치는 모든 것이 참되고 모든 진리의 유일하고 확실한 근원이며 규범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믿습니까? 우리의 믿음이 틀림없다는 보증을 누가 해줍니까? 그것은 오직 성령께서 우리를 우리 안에서부터 설득시키셔서 이루어지는 확신입니다. 우주만물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믿습니까? 천지창조가 이루어질 때 우리가 봤습니까? 안 믿으려면 얼마든지 안 믿을 수 있는 말입니다. 안 믿기가 더 쉬운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삼위로 일체 되신 하나님이라든가 성육신이라든가 동정녀로부터의 탄생이라든가 죽은 자가 살아난다든가 우리 모두의 부활이라든가 영생이라든가 하는 것들 모두가 안 믿는 것이 더 정상적이라고 여겨질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다 믿습니다. 믿어야 합니다. 믿을 수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고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보가 돼서 그런 것들을 믿는 것 아닙니다. 우리가 공부를 덜 해서 그런 사실들을 인정하는 것 아닙니다. 우리가 미개해서 그런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믿게 하시면 안 믿고 싶어도 믿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에로 택하신 사람이라면 반드시 믿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에 목숨까지 걸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논리적으로 설명하거나 증명할 수 없는 것을 믿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감사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도>를 받아들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택하심을 받은 증거이며 구원받을 백성으로서의 표지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도>를 멸시하며 조롱하며 거부하는 자들이 가장 불쌍한 자들입니다. 멸망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에로 택하심과 믿음에로 부르심을 받지 못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들이 아무리 많아진다 하더라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 다시 오실 그날까지 세상은 계속해서 <십자가의 도>를 비웃고 거부하며 우리를 조롱하며 적대시할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를 부인하는 자들이 날로 강해지는 것 같고 <십자가의 도>를 믿는 우리를 더욱 더 어리석은 자들 취급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본문 마지막 절에서 사도 바울이 한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하나님이 어리석으실 수는 없지만 사람의 지혜를 다 모아놓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지혜의 발끝에도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결코 약하실 수는 없지만 세상이 아무리 강해진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서서 견딜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우리와 함께 한다면 무엇이 불가능하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십자가의 도>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힘입어 겸손하면서도 당당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의 도>를 믿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에 감격하고 감사하며 그 은혜에 신실한 믿음과 열심 있는 전도와 섬김으로 응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종교신문1위 크리스천투데이 기사 -->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254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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