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5월 17일 故 한경직 목사
본지는 故 한경직 목사님의 생전 설교 전문을, 한경직목사기념사업회 제공으로 매주 한 차례, [그 때 그 설교] 코너에서 소개합니다. 한 목사님은 얼마 전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목회자' 1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고인의 생전 설교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늘날 한국교회에 생생히 울려퍼지길 바랍니다.
사도행전 2:1~13
오순절에 된 일입니다. 우리 교회 월력(月曆)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지는 다만 둘이라고 어떤 분은 말하였습니다. 하나는 부활절, 또 하나는 오순절이라는 것입니다. 부활절에는 주님께서 부활하심으로 복음의 내용이 교회에 주어졌고 오순절에는 성령께서 오심으로 큰 능력이 교회에 왔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교회에 성령께서 오신 일은 실로 큰 일입니다.
얼마 전에 제가 어떤 공장의 시업식(始業式)에 참석하였습니다. 공장 안에 들어가니까 잘 수리하고 기계를 잘 정비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그 안은 매우 조용했습니다. 그런데 잠깐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거기 단추와 같은 작은 스위치를 저보고 누르라고 해서 그걸 누르니까 갑자기 소리가 나면서 모든 기계가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스위치를 누를 때 그 기계 속에 동력이 들어간 까닭입니다. 물건을 생산하려고 할 때, 공장의 기계를 정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동력이 없이 기계만 가지고는 일을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 여러 기관도 있고, 조직도 있고, 모든 것이 다 정비가 되었다고 하지만 교회에 능력이 임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오늘 오순절을 기념하는 주일인데, 우리가 초대 교회로 돌아가서 어떻게 초대 교회에 성령이 임하였는가, 이것을 다시 한 번 추억해 생각하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오늘 아침 축복하시길 바랍니다.
제일 먼저 우리가 기억하게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성령을 주시겠다고 미리 약속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버지께 고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내려가서 16장에는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니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 오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라" 내가 그를, 성령을 너희에게로 보내리라. 예수님께서 마지막 저녁 잡히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주님께서 부활하시고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후에 승천하시기 전에 이런 분부를 하셨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너희에게 베풀었지만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몇 날이 못 되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테니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분부를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명령을 했습니다.
이 약속과 명령 그대로 제자들과 그들과 같이 한 이들이 꼭 순복하였습니다. 주님의 약속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주님의 약속대로 순복해서, 명령대로 순복해서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아니했습니다. 다락방에 계속해서 모였습니다.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 가운데는 단순히 간구의 기도만은 아니었던 줄로 생각합니다. 과거에 그들의 여러 가지 실패한 것과 여러 가지 잘못한 것과 여러 가지 죄도 고백하고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약속을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그랬더니 열흘째 되던 날, 과연 약속대로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아니하고 믿는 그 믿음, 주님이 분부한 대로 순복하는 그 순복, 죄를 회개하면서 간구하는 그 기도, '주님의 약속이니 꼭 되리라.' 기다리는 그런 마음, 이런 모든 것은 성령을 받는 전제 조건이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준비가 있은 후에 성령께서 약속하신 대로 충만히 임재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전제 조건은 언제나 변치 아니하는 줄 압니다. 지금도 참된 믿음이 있고, 순복하는 마음이 있고, 회개하며 간절히 기도하는 그 사람과 그 교회에 성령께서 충만히 임재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사도행전 2장에서 읽었지만, 성령께서 임재하실 때에는 두 가지 상징이 같이 따라왔습니다. 하나는 급한 바람 소리가 들렸습니다. 또 하나는 불이 혀와 같이 갈라지는 것이 보였어요. 하나는 바람, 하나는 불, 이 두 가지가 상징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우리가 성경을 보아도 이 신약 시대에 한 번밖에 없었습니다. 그다음에 성령께서 임재한 기록이 있지만, 그다음에는 이런 현상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첫번에 이와 같은 상징이 따른 것은 이런 상징을 통해서 성령의 성품이 어떠한가를 알려주기 위해서 이와 같은 이적이 있은 줄로 생각을 합니다.
먼저 우리가 바람을 잠깐 생각해 보면, 이 '바람'이라고 하는 뜻은 '생명'이라고 하는 뜻이 있습니다. 여기 헬라 말이나 히브리 말에는 '바람'이라고 하는 말, '영'이라고 하는 말, '숨결', '숨 쉬는 것'이 다 같은 말이에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중생의 원리를 가르쳐 주실 때 바람을 이야기했어요. 바람과 같이 불기는 불지만, 우리가 그 소리는 듣지만,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다 알지 못하는 것처럼 성령으로 난 자가 또한 이러함이라, 그런 것입니다.
에스겔 37장을 볼 것이면, 에스겔이 그의 이상(異象) 가운데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어떤 골짜기에 가니 마른 뼈들이 가득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이 에스겔을 보고 하는 말이, "네가 이 마른 뼈를 향해서 예언을 하여라. 생기야, 사방에서 불어와서 이 죽임을 당한 사람들 위에 불어라." 여기 '생기'라고 하는 말은 '숨결'이라고 하는 말이요, '바람'이라고 하는 말입니다. 그와 같이 예언할 때에 사방에서 그 마른 뼈 속에 생기가 불어와서 그 사람들이 다시 부활을 했고 살아났고 일어서게 되는데, 보니까 큰 군대가 되었다 하는 그런 기록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곧 성령은 생명입니다. 우리의 숨결입니다. 성령이 임하는 곳에 중생이 있고, 성령이 임하는 곳에 생명이 있다고 하는 뜻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또 바람이라고 하는 것은 역시 능력의 상징이올시다. 봄바람이 아무리 부드럽지만, 엄동설한의 찬 눈을 다 녹여 버립니다. 반면에 급하고 강하게 부는 바람은 바다 물결을 요동케합니다. 심지어 산을 가르게 할 때가 없지 않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폭풍우 가운데서 욥에게 말씀하셨다고 하는 욥기의 기록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바람으로 임하였다고 하는 말은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그때에 그 사람들에게 임하였다고 하는 뜻입니다.
또 "불 같은 혀가 보였다"고 하는 뜻도 역시 깊은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언제든지 불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 됐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호렙산 가시덤불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혹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인도하실 때에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하셨으나 밤에는 그 구름기둥 가운데 불이 보였습니다. 불기둥으로 인도하였습니다. 불은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불로 응답한 사실도 우리가 기억합니다.
불은 빛을 의미합니다. 불은 순결을 의미합니다. 불은 열, 뜨거운 것을 의미합니다. 이들의 위에 성령이 임하게 될 때에 그들의 마음에 빛이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깨끗하여졌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뜨겁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그들에게 임할 때에 그들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충만해졌습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기에 그리스도로 충만해졌어요. 그리스도는 진리임에 진리로 충만해졌어요. 그리스도는 생명이니 생명으로 충만해졌어요. 하나님은 사랑이에요. 사랑으로 충만해졌어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니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해진 것입니다.
여러분, '충만'이라고 하는 뜻은 '가득하다'고 하는 뜻입니다. 쉽게 말하면, 그릇에 물이 가득하면 그 그릇은 별로 소리가 나지 않아요. 빈 그릇이 소리 많이 납니다. 빈 달구지가 소리 더 많이 납니다. 이 제자들도 이 성령의 은혜를 충만히 받기 전에는 쓸데없는 소리가 더러 들렸습니다. 누가 오른편에 앉을 것이냐, 누가 왼편에 앉을 것이냐, 누가 크냐, 그러나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다음에는 그런 소리가 전혀 없었습니다.
오직 한마음 한뜻이 되었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그 심령, 성령이 충만한 그 가정, 성령이 충만한 그 교회는 잡음이 들리지 아니합니다. 누가 크냐, 불평하는 소리, 어떤 때는 심지어 어떤 교회는 싸움하는 소리까지 들립니다. 그 은혜가 충만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충만하면 소리가 없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세요. 어떤 그릇에 무엇이 충만하게 되면 다른 건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걸 물리학상으로 '불가입성의 원리'라고 합니다. 동일한 공간에 동일한 시간에 두 물체가 들어갈 수 없어요. 무엇이 가득하면 그게 좀 나오면 들어갈 수 있지만, 가득하면 그 무엇도 들어갈 수가 없어요. 성령이 우리 마음 가운데 충만하면 세상의 잡념이나 여러 가지로 불결한 생각이나 교만이나 허영심이나 이런 것들이 들어갈 수가 없는 줄 압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은혜가 충만하지 못하므로 종종 잡념이 들어가고, 허영심이 들어가고, 정욕이 들어가고, 불결한 생각이 우리 마음 속을 침노하게 됩니다. 우리 마음 속에 은혜가 충만하면 잡념이 못 들어가요. 그때에 제자들이 이와 같은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또 보세요. 무엇이 충만하면 넘쳐서 흐릅니다. 컵에 물이 가득하면 물이 넘습니다. 넘어요. 이때에 제자들과 120명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그리스도로 충만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하니 이와 같은 충만한 은혜가 넘쳐 흘렀습니다. 우선 입으로 넘쳐 흘렀습니다. 그 속에 그리스도가 가득하니 입을 통해서 자연히 그리스도에 대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리스도를 전파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연히 입을 벌리게 될 때에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베드로가 오순절에 그리스도를 전파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충만하니 자연히 그리스도를 말하게 됐습니다.
우리가 읽은 대로 오순절에 특별히 한 가지 이적이 더 나타났는데, 그것은 "각각 다른 방언으로 말을 했다"고 그랬습니다. 그때 유대 사람들이 대부분 다 여기 모였지만, 여러 지방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자기 지방 말을 합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말씀하게 하실 때에 그 지방 사람들의 말, 외국 방언을 이거 한 번 밖에는 이런 일 없지만, 외국 방언을 말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이것도 얼른 생각하면, 이것 참 이상한 이적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깊이 생각하면 그거 뭐 그다지 큰 이적은 아닙니다. 왜 그런고 하니 지금도 성령께서 말씀하실 때는 각각 그 나라 방언으로 말하는 줄 압니다.
그렇지 않아요? 가령 성령께서 우리 한국 사람에게 말할 때는 한국말로 지도하는 줄 압니다. 그러나 미국 사람한테 말할 때 한국말로 하겠어요? 영어로 하는 거요. 중국 사람한테 말할 때는 중국말로 지도하는 줄 압니다. 요컨대 여기 중요한 것은 성령께서 말씀하실 때에는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이 알아듣게 말했습니다. 알아듣게 말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게 말하는 거, 이것이 매우 중요한 줄 압니다.
예수님께서 보실 것이면 깊은 진리를 말씀하셨지만, 언제든지 누구든지 알아듣게 말해요. 전에 평양의 어떤 목사님에게 어떤 시골 목사가 가서 사경회를 한번 해달라고 부탁을 하니까, 그 평양 목사가 조금 있다가 하는 말이, "그 교회에 내 설교 알아들을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겠나요?" 이렇게 물어봤더라는 겁니다. 어려운 말로 숙어를 쓰면서 그렇게 하는 설교, 혹 자기 지식의 자랑이 될는지 모르지만, 남이 알아듣지 못하면 암만 깊은 설교를 해도 쓸데없는 소리입니다.
성령께서는 다른 이들이 알아듣게 말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할 때에 개인으로 전도할 때에도 그 사람이 알아듣는 말로 알아듣게 하는 게 중요한 줄 압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니 자연히 사랑이 넘쳐서 유무상통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성령이 손으로 넘쳤습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하니까 자연히 그 하나님의 사랑이 손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미쳐서 유무상통하는 생활을 했어요. 그때 교인들 가운데는 한 사람도 배고픈 사람이 없었어요.
혹 어떤 이들은 암만 은혜 받았다 할지라도 주머니 길은 풀리지 않는 사람들 더러 있습니다. 이때에 성령이 충만하게 임할 때에 주머니 길이 다 풀렸습니다. 사랑이 충만하게 넘쳐서 배고픈 사람이 없었습니다. 간절히 바라는 것은, 우리 교회도 이와 같은 성령의 은혜가 충만해서 우리 교회 가운데 배고픈 사람이 하나도 없고, 한 걸음 더 나가서 우리 온 한국 교회가 이와 같은 사랑의 은혜를 충만히 받아서 이것이 넘쳐서 이 땅에 배고픈 사람이 없는 이런 나라가 될 때가 속히 와야겠습니다. 우리가 힘써서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이들은 성령의 사랑이 충만할 뿐 아니라, 성령의 다른 열매도 넘쳐서 흘렀습니다. 희락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모든 다른 열매도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 마지막에, 이들의 생활의 모습을 이런 말로 기록하였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을 사람을 날마다 더하시더라" 모든 은혜가 넘칠 때에 이와 같은 생활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소개할 때에 이런 말씀으로 소개했습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성령과 불의 세례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구약의 예레미야 선지자는 자기의 경험을 이런 말로 기록해서 지금까지 남겼습니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예레미야의 마음 가운데는 아무리 침묵할래야 침묵할 수 없는 것이, 그 가운데는 불붙는 무엇이 있어서 답답해서 그 불이 골수에 사무쳐서 잠잠할래야 잠잠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레미야 마음 속에는 이 하나님의 불이 붙은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휫필드라 하는 분은 기도할 때 늘 이런 말로 기도를 했습니다. "주여,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불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불길이 되게 하여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웨슬리 같은 이는 청년들에게 흔히 하는 말이, "청년들이여, 네 영혼이 하나님의 불로 항상 불타게 하여라." 네 영혼이 하나님의 불로 항상 불타게 하여라.
우리의 심령 속에 과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해서 이 민족을 구원하지 아니하면 견딜 수 없는 안타까운 사랑의 불이 붙습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이 사랑의 불을 던지러 오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기록할 때에 "네가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일어나게 해라. 다시 불을 일으켜라." 부르짖은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위해서 혹은 우리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일할 때에 물론 지식이 필요하고 기술이 필요하고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아니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이 하나님의 불이 그 심령 속에 붙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 남녀 전도회가 있고 학생회가 있고 청년회가 있고 평신도회가 있지만, 이런 단체만 조직한다고 무슨 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단체 가운데, 단체를 지도하는 사람들의 심령 가운데 하나님의 불이 붙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민족을 위하여 일하지 아니하면 견딜 수 없는 사랑의 불이 붙을 때에만, 그 단체, 그 기관이 움직일 수 있는 겁니다.
오늘 이 오순절 주일을 당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 구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간절히 구할 것은 이 성령의 불이올시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불이올시다. 모든 사람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하나님의 사랑의 불이올시다. 이 불이 우리 교회에 임하고 온 교회에 임하고 이와 같은 불이 삼천리에 요원의 불과 같이 붙어서 모든 부정과 불의를 불살라 버리고, 이 땅에 새로운 역사가 창조되기 위하여 우리가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기도합시다.
주님이시여, 주님께서 성령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성령을 기다리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이미 오순절에 성령으로 임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은혜를 계속해서 이 교회에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이시여, 이 시간 저희들은 믿고 기다리오니 우리 심령 위에 새로운 하늘의 불을 던져주소서. 우리 심령의 제단에 다시 불이 일어날 수 있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능력의 불을 가지고 모든 것을 바치며 주를 위해서 우리 사회를 위해서 일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종교신문1위 크리스천투데이 기사 -->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23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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