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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계 명설교

[한경직 목사 설교] 두려워 말라

by 크리스천투데이 일본지사 2023.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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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는 故 한경직 목사님의 생전 설교 전문을 한경직목사기념사업회 제공으로 매주 한 차례 소개합니다. 한 목사님은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목회자' 1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고인의 생전 설교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늘날 한국교회에 생생히 울려퍼지길 바랍니다.

 

▲故 한경직 목사.

이사야 43:1~7
1954년 5월 25일 설교

 

“너는 두려워 말라”

하나님께서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권면하십니다. “너는 두려워 말라!” 지금 전 세계를 살펴볼 것이면 금일은 문자 그대로 공포의 시대입니다. 어떤 나라나 어떤 민족을 막론하고, 2차대전의 쓴 경험을 본 그들은 이제 3차대전이 세계 어느 구석에서 일어나지 않을까? 혹은 이제 원자탄의 세례가 내가 사는 도시에 맞아서 오랫동안 건설했던 현대 문화를 말살하지나 않을까? 문자 그대로 공포와 불안 가운데 싸여 있습니다. 38선을 가운데 두고 6·25사변의 참담한 경험을 가진 우리 민족은 더욱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으리만큼 하루하루의 생활이 불안과 공포 가운데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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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여기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을 향해서 하시는 말씀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공포심이라는 것은 본래 우리 인간의 본능 가운데 하나로써 하나님께서 이 본능을 우리 인간에게 주실 때에는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고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 공포라는 감정을 주신 것입니다. 아이들은 자연히 높은 곳에 올라갈 때는 무서워하고 깊은 곳을 들여다보아도 무서워하고, 어두운 밤을 만나도 두려워하고, 낯선 사람을 만나도 두려워합니다. 이것은 다 유익합니다.

 

렇게 무섭게 생각하기 때문에 높은 데 올라갈 때나 깊은 데 들여다볼 때 더 조심합니다. 밤에 어두운 길을 갈 때에는 더 조심합니다. 낯선 사람을 만나면 우리가 조심하는 것은 그 사람이 혹 우리를 해하지나 않을까 염려하는 까닭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본래 공포심은 우리 인간 생활을 도와주기 위해서, 생명을 보존하는데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의 유익한 본능 중 의 하나로써 주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죄악으로 말미암아 타락한 이후에는 모든 본능이 그 본래의 지경을 지나서 도(度)에 넘게 되고, 또한 형태가 변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마땅히 두려워할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을 많이 두려워하게 되었고, 또한 도에 넘치게 많은 것을 두려워하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는 공포심이라는 것인데, 지금은 보통 사람에게 있어서는 생명에 도움이 되는 것보다도 여러 가지의 인간의 생활을 해하는 한 감정적 요소로 전락되고 말았습니다.

 

이 공포심이 생명에 있어서 심리적 생활, 육체적 생활에 대해서 해독을 끼치는 것은 오늘날 과학자들이 많이 연구하고 그 결과를 대강 짐작하는 것입니다. 심리적 영향을 먼저 살펴볼 것이면, 어떤 사람이 공포에 싸이면 볼 것을 바로 보지 못하고 들을 것을 바로 듣지 못하고, 말하자면 그 심리 상태가 마비되는 것입니다. 매우 심하게 되면 정신에 이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여러분, 아마 그런 경험을 많이 보았을 줄 압니다. 공포심에 싸인 그 정신 상태는 심히 위험한 자리에 있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 공포심이 우리의 육체적 생활 곧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얼마나 해로운지 우리가 지금은 알게 된 것입니다. 병이 일어나는 것은 반드시 세균으 로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부상해서만 오는 것도 아닙니다. 소위 기능적 질병이라고 해서 여러 가지 심리적 관계로 우리에게 병이 오는데, 특별히 신경계통의 병, 소화기계통의 병, 심장병 같은 것은 공포심에 싸여서 근심과 염려로써 세상을 보낼 때에 이러한 병이 자연히 우리에게 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두려운 가운데서 근심과 염려로 얼마 동안 시간을 보내게 되면 그 사람의 신경이 쇠약(衰弱)해지고, 마지막에는 점점 예민해지다가 심하게 되면 히스테리 같은 상태로 마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공포심과 근심과 염려가 특별히 소화기병에 관계가 있다고 하는 것은 아마 여러분의 체험으로 아시고 여러분의 관찰로도 많이 알 것입니다. 여러 과학자들의 조사한 결과를 보건대, 소화기병 가운데 특히 위궤양(胃潰瘍 stomach ulcer)이라는 것, 이와 같은 병은 두려운 마음과 근심에 싸여서 오래 있게 되면 자연히 이런 병이 생긴다고 합니다. 우리 한국에서 흔히 가슴앓이라고 하는 병도 어떤 이에게 오는가 하니 근심하고 염려하고 장래를 두려워하는 가운데, 불안한 가운데서 오래 계속이 되면 흔히 그런 병이 없는 사람이라도 생긴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여러 해 전에 미국에서 갑자기 큰 불경기가 되어서 경제적 타격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공포 가운데 놓이게 되었을 때, 모든 미국의 유명한 병원을 조사해 보니 특별히 소화기 계통의 병과 신경 계통의 병과 심장병의 환자가 갑자기 격증했다고 합니다. 결국 사람이 공포에 싸이게 되면, 바로 생각도 할 수도 없고, 바로 활동할 수도 없으며, 그런 공포 속에서 오랫동안 있게 되면 그 심리 상태와 육체까지도 점점 마비가 되어서 온전한 생활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극단의 실례를 들면 노름하는 사람들, 혹 줄 타는 사람들이 높은 곳에 올라가서 줄을 타다가도 갑자기 아래를 내려다보고 무서운 마음이 생기게 되면 잘못하여 떨어지게 됩니다. 이것은 떨어질 것 같은 무서운 생각이 나서 떨어진다고 합니다. 흔히 전쟁에 나가서 싸우다가도 갑자기 적이 무서운 생각이 나게 되면 그 전쟁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마지막에는 그 전쟁에서 패하고 맙니다. 병들어서 병을 치료하는 사람이라도 그 병에 대해서 무서운 생각이 나고 그 병 때문에 죽을까 보다 하는 무서운 생각이 나게 되면 그 환자는 그 병 가운데서 다시 일어나기 매우 어렵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병을 앓아서도 죽지만 무서워서도 죽습니다.

 

옛날 동로마 제국에 내려오는 전설 가운데 이런 전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마차를 타고서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향해서 가는 데, 거의 성에 가까웠을 때에 어떤 나이 많은 할머니가 서서 “내가 이 성에 꼭 들어가야겠는데, 당신이 마차 옆에 나를 좀 태워서 들어가게 해 주시오” 하였습니다. 친절한 이분이 “그럼, 할머니 타세요”하고 태웠습니다. 마차를 몰고 가다가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니까 그 눈 생긴 것과 코 생긴 것 이 어떻게 흉하게 생겼는지 알 수가 없단 말이오. 그래서 묻기를 “할머니, 당신이 대체 누구요?” 물어보았습니다. 그 할머니 말이“나는 호열자(虎列刺 콜레라) 귀신이올시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깜짝 놀라서 “아, 당신이 호열자 귀신이요? 그러면 우리 성에 무엇하러 옵니까? 사람 죽이러 옵니까? 당장 내리시오” “나는 내릴 수 없어요. 당신 가만있는 것이 좋을 거요” 이것 큰일났습니다. 그러나 그 할머니는 “내가 콘스탄티노플에 들어가서 그저 사람 다섯 명 이상은 안 죽일 테니까 그것을 분명히 믿으시오” 그러면서 자기 가슴 속에서 비수를 내어 그 사람에게 주면서 하는 말이 “이 비수를 가지고 나를 찌르면 내가 이제라도 금방 죽는데, 내가 들어가서 다섯 사람 이상만 죽이면 당신은 이 비수로 나를 죽이시오. 다섯 사람 이상은 안 죽일 테요.”

 

그러는 동안에 어느덧 마차는 성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할머니는 내려서 어느 집으로 급히 들어갑니다. 벌써 그날 저녁부터 소문이 나는데, 이 집에서 호열자가 났다, 저 집에서 호열자가 생겼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죽는데, 이틀이 못되어서 약 2000명이 죽었습니다. 이 사람이 대단히 노해서 비수를 가지고 이 할머니가 어디에 있는가, 집집이 찾아다닙니다. 한 집에 가서 이 할머니를 만나서는 다짜고짜 죽이려고 칼을 꺼냈단 말이오. 그러니까 이 할머니가 하는 말이 “당신, 왜 나를 죽이려고 합니까? 다섯 사람밖에 안 죽였어요” “다섯 사람밖에 안 죽였어요? 5000명 이상을 죽이고는 다섯 사람밖에 안 죽였어요?”이 할머니 말이 “난 실상 다섯 사람 밖에 안 죽였는데, 그 밖의 사람들은 무서워서 죽었습니다.”

 

여러분, 무서워서 죽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서워서 심령도 죽고, 무서워서 육신도 죽고, 무서워서 사업도 실패를 하고, 무서워서 시험에 낙제를 하고, 경기하다가 지고, 무서워서 죽은 사람 많습니다. 공포 때문에 사람들이 미신을 숭배합니다. 특별히 전쟁이 일어날 때에 도처에 서양이나 동양을 막론하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뭐 점쟁이를 찾아가고 당책(唐冊 점을 칠 때 보는 책)을 보고 손금을 보고 관상쟁이를 찾아가고 합니다. 왜 미신을 좇아가는 것이냐 하면, 전쟁 때는 더 무서우니까 그런 것입니다. 행여 이 액을 피할까, 장래가 무서우니 미신을 좇아갑니다. 이 공포심이 우리 인생에 주는 해독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자! 여러분, 이 공포를 정복하는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이 공포를 온전히 이기고 든든한 믿음으로, 평안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주신 이 대지에서 활보하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여러분, 분명히 들으세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부르신 것은 건강히 깨끗이 살기만 위해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이 공포심을 이기고 평안한 마음으로 하 나님이 주신 평강으로 기쁘고 즐겁게 살게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 가운데 아직까지도 이런 지경에 들어가 지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여러분! 어린아기를 길러본 사람들은 잘 알 줄 압니다. 어린아기가 어머니 곁에서 자다가 밤에 깨어서 보니 캄캄합니다. 어머니는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아니합니다. 자연히 어린아기가 엉엉 웁니다. 무서워서 웁니다. 어두워서 무서워서 웁니다. 그때에 어떻게 해야 저 아기가 울음을 끊고 다시 잠이 듭니까? 암만 어두워도 어머니가 옆에 있다가 그 아기의 가슴에 손을 대 고 두드려 주면서 “얘, 나 여기 있어. 여기 있어. 어서 자라.”고 하면 그 아기는 울음을 뚝 끊고 평안한 마음으로 바로 잠이 듭니다. 무엇이 그 아기로 하여금 무서운 것 없고 평안한 마음으로 잠들게 했습니까? 하나는 어머니 손이요, 어머니 손을 통해서 어머니를 믿고 의지하는 그것이 무서운 것 없이 하고 다시 평안히 잠이 들게 했습니다.

 

이사야 12장 2절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 시라 내가 의지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공포를 이기는 방법은 오직 하나 있는데,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온전히 의지하는 그것 밖에는 없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읽어 볼 것이면 하나님께서 몇 번이고 우리 약한 인생을 향 해서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같이 한다”는 간절한 언약과 권면이 몇 번이나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제 제가 신구약 성경을 통해서 몇 곳만 읽을 때 여러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창세기 15장 1절을 제가 읽습니다. “아브라함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너의 상급이니라” 어느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런 말씀을 했는가 하니, 모든 나라가 움직이면서 큰 싸움이 일어나서 자기의 조카가 잡혀갔던 것을 겨우 빼앗아 왔을 때, 이제 다시 무슨 일이 날지 알 수 없고, 자기는 후손도 없고 가까운 친척도 많지 못하고 외지에 와서 사는데, 장래의 생각을 하니 아득하고 국제 정세는 대단히 동요하고 어지러운 가운데서 미래를 생각할 때에 아브라함의 마음에는 공포심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와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내가 방패가 되어서 너를 막아줄 테니 두려워 말라.”

 

오늘날 우리 믿는 사람 가운데는 국제 정세가 긴박해 오고 장래를 예측할 수 없는 고로 공포와 불안 가운데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이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두려워 말라 나는 네 방패니라” 창세기 26장 24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이 말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게 준 말씀입니다. 이삭이 외로이 가나안 땅에서 살 때 유대 땅에는 우물이 마르지 않습니까? 물이 말라서 우물을 파만 놓으면 욕심 많은 블레셋 사람들이 쫓아 와서 이것은 우리 우물이라고 빼앗습니다. 부득이 이삭은 양보하고 다른 곳에 가서 다른 우물을 또 파니 이 사람들이 또 쫓아와서 이것은 우리 우물이라고 또 빼앗습니다. 또 다른 곳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이곳저곳 피난해 다니면서 심히 외로워지고 마음이 답답할 때 하나님이 이삭에게 나타나서 “너 이삭아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네게 복을 주어서 네 자손으로 하여금 번성케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날도 집이 없어 이곳에 가고 저곳에 가서 방황하는 교우들이 많은 줄 압니다. 이러한 모든 교우들에게 하나님께서 이 말을 주시는 줄 압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깨끗이 살기 위해서 부득이 전전하며 유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열왕기상 17장 1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지고 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고” 그것은 3년 6개월 동안 유대 나라에 비가 오지 않을 때에 사르밧에 가서 아주 가난하게 사는 과부 하나를 만났습니다. 이 과부는 어린아이 하나만 데리고 사는데, 오랫동안 가뭄이 심해서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다 떨어져 마지막에 가루만 조금 남았는데, 그것을 가지고 떡을 해 먹으려고 나무를 주우러 왔다가 엘리야 선지자를 만났습니다. 엘리야를 보고 하는 말이 “나는 이 나무를 갖다가 떡을 해 먹고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그 과부에게 하는 말이 “두려워하지 말라. 네 마음대로 이것으로 떡을 만들어라. 우선 떡을 만들어서 나한테 가져오너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네 밀가루 담은 통이 이 흉년이 다 지날 때까지 없어지지 않게 하겠다.” 이렇게 가련한 사르밧 과부에게 약속을 주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우 가운데 이렇게 외로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매우 가난하게 사는 가운데서 두려워하고 근심하는 여러 자매님들이 계신 줄 압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라고,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그와 같이 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심으로 어려운 때를 지나갈 수 있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열왕기하 6장 16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두려워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와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엘리사가 도단성에 머물고 있을 때에 아람 사람들이 엘리사를 잡으려고 밖에 갑자기 와서 포위를 했습니다. 아침에 나가 보니 도단성은 전부 아람 군대에게 포위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엘리사의 종이 두려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엘리 사를 통하여 그 종에게 하는 말이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하는 자가 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사람보다 많다”고 하셨고, 하나님께 그 종의 눈을 열어 달라고 기도할 때에 눈을 뜨고 보니 도단성을 두른 불말과 불병거가 겹겹이 두른 것을 그 종이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요새 인도차이나의 전쟁을 보니 디엔비엔 푸가 함락하고, 공산당이 점점 강성해 가니 이렇게 되다가는 우리 한국이 어떻게 될는지 모르겠다고 혹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두려워하지 마시오. 우리와 함께 하는 자가 저들과 함께 하는 자보다 많습니다. 두려울 것 조금도 없습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 이런 말씀으로 우리 믿는 사람에게 권면과 위로를 줍니다. “두려 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 말씀은 모든 약한 사람들에게 세력으로도 약하고, 물질로도 약하고, 몸도 약하고, 병든 모든 약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권면하시고 위로하시고 힘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약하다고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오른손으로 붙잡아 주시겠다고 언약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 한마디를 볼지라도 여기 다시 두려워하지 말라고, 그 아래 내려가다가 무슨 말을 하였는가 하면 “강을 건너갈지라도 빠지지 않게 하고 불이 있을지라도 사르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강과 같은 역경, 불과 같은 환난을 당합니다. 그렇지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환난 가운데 같이 계셔서 붙들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불을 건너갈지라도, 물을 건너갈지라도 우리의 심령이 손해를 받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이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에 와서 볼 것이면 우리 주님께서도 몇 번이나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장 31절을 보면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떨어지는 참새도 권고하시는데, 참새보다 귀한 너희들을 하나님께서 권고하시지 않겠느냐? 근심과 걱정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2장 32절을 보면 특별히 제자를 보고 하시는 말씀이 “적은 무리여 두려워하지 말라 아버지께서 하늘나라를 너희에게 주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때에 두려운 생각이 납니까? 내가 이 약한 믿음을 가지고 어떻게 하늘나라를 얻을 수 있을까?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늘나라를 주시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의 마음이 연약하다고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한 곳 더 읽읍시다. 요한계시록 1장 17절로 18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라” 이 말씀은 다시 사신 주님께서 요한에게, 죽음을 무서워하는 모든 사람에게 외치는 말씀이올시다.

 

“내가 죽었노라. 그러나 다시 살아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고 있 다. 그런 까닭으로 나를 믿는 너희들아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가 어찌해서 다 두려워합니까? 마지막에는 다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우리에게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서 세세에 처음과 나중이요,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진 주님께서 우리와 같이 하십니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여기에 가르쳤습니다. 유명한 부흥사 디엘 무디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말하자면 천당 가는 기차, 혹은 마차 같은 것을 탔다 고 볼 수 있는데, 기차를 보면 이등차도 있고 삼등차도 있고 또 일등차도 있습니다. 그런데 일등을 타든지 이등 혹은 삼등을 타도 기차를 타면 부산에서 서울까지 옵니다. 그러나 삼등차를 타는 것은 얼마나 괴롭습니까? 대단 히 괴로워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다 구원을 얻기는 얻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삼등차를 타고 천당에 갑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인가 하면 예수를 믿어서 내 구주로 알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았으니까 그냥 꾸준히 믿어 가면 천당에는 가겠지만, 아직까지도 분명히 예수님께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분명히 의지할 줄 몰라서 두려운 마음, 근심과 걱정을 그 냥 가지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늘 믿기는 믿지만 늘 근심 하고 걱정하고 염려하며 예수를 믿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근심과 걱정, 염려를 온전히 다 주님께 버리고 십자가에 다 맡기고 가벼운 마음으로 천당에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다 천당 가는 차를 타기는 탔는데 일등차를 탔는가, 혹은 아직도 삼등차를 탔는가? 제가 부탁하는 것은 이 일등차는 제한이 없습니다. 아직 삼등차를 타고 가시는 분이 계시면 다 일등차로 옮겨 타시기 바랍니다. 이 예배당을 떠나시기 전에 아예 다 일등차로 옮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모든 공포심, 모든 의심, 모든 염려 주님께 맡겨 다 내어 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다 일등차로 옮기시기 바랍니다.

 

감리교 설립자인 유명한 요한 웨슬리 선생이 큰 은혜를 받기 전입니다. 미 대륙에 가서 전도하다가 실패하고 본국으로 돌아갑니다. 그때의 배는 조그마한 풍선을 타고 다닐 땐데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바람에 불려 밀려갑니다. 이렇게 되니까 배를 탄 사람들은 죽는 줄 알고 두려워서 어떻게 할 줄 모릅니다. 요한 웨슬리도 겁이 나서 죽을 지경입니다. 그런 가운데 두 사람이 있는데 그들은 모라비아 교회에 속하는 선교사들로 역시 미국에 선교하러 갔다가 같이 배를 타고 오는데, 가만히 보니까 그 두 사람은 아무리 위험해도 조금도 두려운 기색이 없습니다. 그 얼굴에도 도무지 두려운 기색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과 뛰어나게 다르단 말이오. 그래서 풍랑이 끝나고 잔잔해진 다음에 요한 웨슬리가 물었다고 합니다. “아, 가만 보니까 다른 사람들은 다 무서워하는데 두 분은 도무지 두려운 기색이 없으니 그게 어찌된 일입니까?” 그러니까 이 선교사 가운데 한 사람이 대답하는 말이 “왜 우리 믿는 사람이 무서워하겠습니까? 우리가 예 =수님을 알지 못합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의지하고 우리의 생명을 다 맡겼는데 왜 무서워하겠습니까?”라며 요한 웨슬리에게 반문하는 말이 “당신, 아직도 예수님을 모릅니까?” 하였다고 합니다. 참믿음에는 모든 공포심이 떠납니다.

 

종교신문1위 크리스천투데이 기사 -->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29031

 

[한경직 설교] 두려워 말라

두려워 말라 이사야 43:1~7 1954년 5월 25일 주일낮 예배 원자시대와 신앙생활 “너는 두려워 말라” 하나님께서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권면하십니다. “너는 두려워 말라!” 지금 전 세계를 살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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