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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계 명설교

[이찬수 목사 설교 전문] 1만 성도 파송 운동의 정신

by 크리스천투데이 일본지사 2023.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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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수 목사가 23일 주일예배에서 설교하고 있다. ⓒ교회

가정에서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님들에게도 이 자리에서 드리는 것과 또같은, 그 이상의 은혜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영상으로도 광고를 보셨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고 이것이 모든 사람들을 두렵게 만드는 상황입니다. 신천지 교회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이럴 때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선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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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후 매일 홈페이지 들어가서 상황을 체크해 보시고, 그때그때 선제 대응을 잘 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번 주일부터 새벽기도,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등 모든 주중 예배는 인터넷으로 가정에서 예배드립니다.

 

이 일이 오히려 장소를 불문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은혜를 누릴 수 있는, 맛보고 경험하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모든 훈련 프로그램 모임들도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무기한 연기합니다.

 

저도 습관이 돼서 손이 불쑥 나오는데, 교회에서 만나는 분들도 당분간 악수보다 눈인사로 대신해 주십시오. 주일학교, 대청교구는 현장에서 따로 예배드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홈페이지로 예배드릴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마가복음 1장 1-8절입니다.

 

“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2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4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5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6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7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2)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깜짝 놀랐던 것은 어제 하루 동안 229명이나 늘었는데, 이 숫자는 지난 한 달치 확진자 숫자보다 많은 것입니다. 가장 두려웠던 것이 학교 감염입니다. 그래서 송림 중·고교 예배를 드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성가대도 설 수 없고 여러가지 불비한 상태이지만, 어떤 상황보다 격동시키는 것이, 앉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중국에서 탄압 가운데 예배드리는 분들, 북한에서 지하교회에서 예배드리는 분들 생각이 났습니다. 그 동안 너무 편한 상황에서 예배드려왔다는 것이 감사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도 목숨 걸고 예배드리는 북한과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 많은 분들의 예배가 얼마나 많은 대가를 지불하는가, 이런 것들이 저를 계속 울컥하게 만듭니다. 가정에서 예배드리나 이 자리에서 예배드리나, 이 예배의 의미가 어떤 편하게 드리는 예배보다 성령의 강력한 임재와 주님을 사랑하는 우리 마음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 입장에서 보면 오늘은 굉장히 중요한 날입니다. 7년 전 1만 성도 파송운동을 선포하고 실제적인 향후 일들을 오늘 함께 나누는 너무 중요한 날인데, 하필 이런 날 본당에서 에배드릴 수 없고 가정에서 예배드리는 일이 일어나는가? 무슨 의미를 던져주는가? 한 주 내내 여러 생각이 겹치고 복잡했습니다.

 

이런 혼란스러운 마음을 잠재워준 책이 한 권 있습니다. <기독교의 발흥>입니다. 어떻게 변방에서 시작한 조그마한 신앙 공동체가 로마를 정복하고 2천년 지난 오늘날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대한 신앙 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었는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예전에 한 번 인용했던 적이 있는데, 왜 다시 꺼내 들었을까요. 이 책 4장을 보면, 지금 우리가 겪는 상황과 똑같은 일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시절 두 번에 걸친 역병이 발병했습니다. 첫째로 일어났던 것이 156년 로마 전역을 강타해, 15년간 로마 제국 인구의 1/3에서 1/4이 사망하는 엄청난 재앙이 있었습니다.

 

100년 지난 뒤, 2차 역병이 발생합니다. 전염병이 한창일 때, 로마에서 하루에 5천명씩 죽었다는 기록도 있고, 알렉산드리아 인구의 2/3가 사망할 정도로 엄청난 재앙이었습니다.

 

그 책에서 주목하는 것이 사회가 혼란에 빠지자, 초대 기독교인들의 활약이 너무 놀라웠다는 것입니다. 당시 이교도들은 질병이 처음 발생하자 아픈 자들을 내쫓고 도망갔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교리를 가지고 그들을 안심시켰습니다. 그리고 실제적 활약을 했습니다.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아픈 자들을 도맡아 섬겼습니다. 많은 이들이 간호하다 대신 죽기도 했습니다. 환자로부터 병이 옮는데도, 기꺼이 고통을 감내하며 죽어갔습니다. 평안과 기쁨 속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너무 부러웠던 게 한 시대, 한 사회가 역병으로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초대교회가 지금에 비해 얼마나 미미한 숫자입니까. 그런데 그 시대를 선도하고 리드하고 섬기는 역할을 초기 기독교인들이 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변방에서 시작한 신앙 공동체가 놀라운 영향력 있는 공동체로 발전하는 계기로 이어졌습니다.

 

지난 주에 책을 다시 점검하고 읽으면서, 이 시대 모든 국민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두려워하는 시대에,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너무 현실에 위축되지 않고, 지금이야말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할 때 아닌가 합니다.

 

그 책에서 놀라운 하나를 발견. 이교도들은 시신을 버리고 도망가고 환자가 죽기도 전에 거리에 내다 버리는 일을 저질렀는데, 기독교인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환자들을 돕다가 감염돼서 죽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결과를 조사해 보니, 이해가 안 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교도들이 30% 목숨을 잃을 때, 기독교인들은 10%밖에 죽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선 기독교인들이 시신 처리를 잘 하고 깨끗하게 정리하니 실제적으로 역병을 물리치는 도구가 됐고, 목숨을 덜 잃는 결과를 가져온 것 아닌가 하는 분석도 있습니다.

 

주님 말씀 그대로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기를 원하는 자는 죽는다. 이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때 오히려 우리가 살아 나가는 길일 수 있습니다.

 

지난 주 이 책을 쭉 읽으면서, 한편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정신으로 살아야 하는지 묵상했습니다. 1만 성도 파송운동이 어떤 정신으로 출발했고,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하는지 많이 생각했습니다.

 

또 오늘 본문의 주인공 세례 요한을 많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세례 요한이야말로 초대 기독교인들이 보인 정신을 실제로 살아낸 인물입니다. 개인적으로 7년 전 파송 운동을 선포한 이후, 제게 영향을 미쳤던 몇몇 인물 중 가장 묵상을 많이 하게 하고 생각을 많이 하게 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주부터 시작한 마가복음 1장의 흐름이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사복음서 중에서, 거두절미하고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한 인물이 마가입니다. 별 설명 없어 바로 1장 1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직설적으로 선포했는데, 바로 주인공이신 예수님이 등장하지 않고 세례 요한이 등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분의 복음을 드러내기 전에, 인간들을 동역자로 세우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어떤 일을 맡기길 원하십니까.

 

세례 요한은 주의 길을 준비하고 곧게 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주인공 되시는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방해하는 영적 장애물을 제거하는 일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영적 장애란 어떤 것입니까. 죄로 물들어 강팍해진 심령, 복음이신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든 강팍했던 심령을 푸는 일을 맡기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역할도 세례 요한에게 주신 역할과 거의 같습니다. 어떻게든 주의 종으로서 주인공이신 주님의 복음이 편만하게 평탄하게 전해지도록, 주의 길을 곧게 하는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

 

2주간 세례 요한을 살펴보겠습니다. 그의 구체적인 사역은 다음 주에 보도록 하고, 오늘은 세례 요한이라는 존재에 대해 살피겠습니다.

 

7년 전 1만 성도 파송운동을 선포하고, 요한복음 1장 23절을 수없이 되뇌었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세례 요한이 스스로를 소리라고 묘사했습니다.

 

이 말씀의 배경이 너무 은혜스럽습니다. 세례 요한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존재감이 커지니, 사람을 보내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이 분이 메시아인가?’ 그런데 세례 요한이 ‘나는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엘리야냐? 아니다. 그러면 너는 무엇이냐?’ 물었더니, 제가 7년간 되뇌었던 그 말씀을 한 것입니다.

 

소리는 실체가 없습니다. 메시지가 전해지면, 소리는 사라지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존재감이 없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자기 정체성입니다.

 

지난 7년간 세례 요한이라는 존재에서 배웠던 핵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존재의 의미를 너무 크게 생각하지 않는 태도였습니다. 심지어 주님 앞에서 스스로를 굉장히 하찮은 존재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인식하는 모습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에서 신발끈을 풀고 묶는 일은 노예가 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이 표현은 주님과 자신을 주인과 노예로 설정했다는 것입니다. 신발끈도 못 풀겠다는 것은 노예보다 못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메시아라고 생각하는데 소리일 뿐이고 노예조차 안 되는 인생이라고 합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자기 비하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지난 7년간 세례 요한의 삶 자체, 그의 업적과 행위도 어마어마하지만, 자기 인식이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모릅니다. 알고 보니 세례 요한의 흉내만 내도, 마음에 평안이 왔습니다.

 

연말에 충격을 좀 받았습니다. 누가 무슨 사이트 들어가 보라고 해서 봤더니, 이단이 만든 것인데 ‘이찬수 목사가 친동성애자다, 이념에 찌들었다’면서 완전 가짜뉴스로 매장했습니다. 슬펐던 것이, 제가 본 그때 이미 조회수가 20만이었습니다. 이단이 가짜뉴스 만들고 동역자들이 퍼나르는 현실이, 굉장히 저를 슬프게 했습니다.

 

하지만 상처는 받지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 때문입니다. 저는 광야의 소리이지 않습니까. 은퇴하고 1-2년만 지나도 존재가 없어질 것 아닙니까. 은퇴하고도 발버둥친다면, 소음이 될 뿐입다. 나같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를, 다 잊혀질 존재임을 몰라서, 저에 대해 칭찬하거나 비난하는 것을 설명하는데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상처받지 않았습니다. 내 존재가 너무 크기 때문에, 걸핏 하면 상처받는 것입니다. 저는 소리입니다. 메시지가 전해지면 끝입니다.

 

▲23일 분당우리교회 예배가 진행되고 있다. ⓒ교회

한국 교회와 사회를 혼란하게 만드는 대부분의 잣대는 여기서 다 답이 나옵니다. 역할이 끝났는데 어떻게든 존재가 남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것이, 이 시대에 소음을 유발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세례 요한의 자기 존재감을 보면서, 계속 되뇌었습니다. 이 이찬수라는 존재에 대해 너무 많은 의미를 담지 않도록, 끊임없이 본능과 싸울 수 잇는 은혜 주시길 원합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존재감을 너무 많이 부여하는 문제, 이것을 세례 요한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주님은 흥해야 하고, 저는 망해도 괜찮습니다. 세례 요한은 말만 이렇게 한 게 아니라, 기꺼이 악한 권력에 대항하다 순교당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이 세례 요한에게서 너무 중요한 한 가지를 배웁니다. 자기가 자기 존재에 무게를 두지 않으니, 스스로에 대해 두 가지 놀라운 열매가 나타났습니다.

 

1. 그가 전하는 메시지의 무게가 점점 더해졌다

 

첫째, 스스로를 대단한 존재로 여기지 않으니 그가 전하는 메시지의 무게가 점점 살아났습니다.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만이 영향력이 아닙니다. 누가복음 3장 7-8절을 봅시다. 이런 모독적인 말이 어디 있습니까. 독사의 자식?

 

그런데 무리들의 반응을 보세요.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말의 무게가 엄청납니다. 오늘날 강단이 힘이 없고, 목사들의 말에 신뢰가 없고, 설교하면 바로 댓글 달리고 악플이 난무합니다.

 

이렇게 메시지의 영향력이 사라진 모든 문제가 어디서 기인했습니까? 목사의 존재감과 무게가 너무 크기 때문 아닙니까. 우리가 커지면서 메시지가 죽어버렸습니다.

 

불과 10-20년 전 영향력을 미치던 교회들, 메시지가 죽은 교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소리인데, 역할이 끝나면 사라져야 하는데, 자기 존재가 남아있겠다고 발버둥치면서 소음을 내니 메시지가 죽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살려면, 목사가 죽어야 합니다. 내 존재가 죽어야 합니다. 이찬수라는 존재가 별 중요치 않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 노예보다 못한, 노예는 인권 이런 게 없습니다. 주님 안에서 종입니다. 존재가 초라해지면, 그가 전하는 메시지가 살아날 것입니다.

 

모든 기독교인들이 내 존재를 어떻게 해보겠다고, 말만 하면 자존심 상했다고 합니다. 제 조카가 3살 때쯤 일인데, 주변 또래 몇이 계속 조카를 괴롭혔대요. 누나 입장에서 속상하니 ‘걔랑 놀지 마라’ 그러는데 조카는 계속 다가가고 마음을 열어서, 하루는 누나가 너무 속상해서 ‘놀지 마라고 했잖아, 자존심도 없니?’ 했더니, 조카가 울면서 복음적인 말을 했습니다. ‘없어요’.

 

해코지하고 따돌리는 그 아이에게 다가가서 자존심도 없냐고 물을 때, 없다고 하는 것이 세례 요한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존재감을 죽여야 합니다. 자기를 너무 귀하게 여길 때, 기독교가 죽습니다. 메시지가 죽습니다.

 

2. 주인 되시는 주님이 그를 큰 자라고 인정해 주셨다

주님께서 세례 요한에 대해 뭐라고 하셨습니까.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없도다(마 11:11)”. 이 이상의 인생 목표가 있겠습니까. 이런 비슷한 평가만 들어도, 제 모든 것을 바칠 것입니다.

 

제가 존재감을 죽이니, 주님이 살려주십니다. 이것이 복음의 원리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존재감을 계속 키워 가면서, 말만 하면 자존심 상하고 상처받았다고 하는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이 두 가지 열매가 지난 7년 동안 제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일만 교회 파송 운동’의 방향에 대해 나눠보려고 합니다.

 

첫 시작이 어떻게 됐는지 이미 다 아실 것입니다. 교회를 개척했는데, 한 몇 년 뒤부터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계속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일만 교회 파송 운동을 선포했던 2012년 전후에는 1년 등록이 4,200명 가까이 됐습니다.

 

당시 행정목사가 중간 보고하기를, 이 추세면 올해 등록이 5,000명 넘길 것 같다고 했습니다. 부교역자들은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매주 등록심방 하다가 하루 다 갔습니다.

 

저는 그 상황이 너무 불편했습니다. 양심이 있으니까. 이렇게 한 교회로 몰려오는 일이 절대 건강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영화 <타이타닉>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타이타닉호가 어려움을 겪기 전엔 쏠림 현상이 없었습니다. 식당도 가고 배 바깥에서 팔 벌리기도 하고 잘 분산됐는데, 배에 문제가 생기니 쏠림 현상이 생겼습니다.

 

제 양심을 걸고, 우리교회로 몰려드는 현상이 딱 그런 현상 같았습니다. 한국 모든 교회가 우리처럼 부흥이 일어났다면 춤을 출 일이겠지만요.

 

2012년 6월 4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악몽을 꾸게 하시고 가위 눌리게 하시고 혼란스러운 시간을 갖게 하신 뒤, 정각 새벽 3시에 자다 일어나서 마루에 앉아있었는데 강력한 메시지 하나를 주셨습니다.

 

‘미자립교회가 이렇게 많고 어렵다고 아우성 치는데, 너희 교회로만 4-5천명씩 등록하는 게 옳은 일이냐?’ 일만 교회 파송 운동이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잠결에 두 가지를 약속했습니다. 성도가 2만 명이 넘어서던 시점이었는데, 오늘부터 만 10년에 걸쳐, 절반에서 3/4 정도, 1만-1만 5천명을 파송하겠습니다. 드림센터 입주한지 6개월 되던 때였는데, 센터도 10년만 쓰고 한국 교회와 사회를 위해 환원하겠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대단합니다. 목사가 잠결에 하나님께 한 약속이었습니다. 50%도 나올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2월 공동의회 그 주간이 제 생애 가장 길었는데, 결과는 무려 97%가 찬성했습니다.

 

모두가 놀랐습니다. 제게 두려움이 엄습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내보내는가, 물건도 아니고…. 가라고 한다고 가지나요 그랬는데, 하나님께서 저희 교회 장로님들은 말할 것도 없고 여러 전문가들을 만나게 하시고 지난 7년간 새벽마다 씨름하게 하셨습니다. 제가 보기엔 하나님께서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먼저 당회에서 결의한 것은 분당우리교회는 30개 교회로 분립개척한다는 것입니다. 교구가 지금 20개인데, 올 연말부터 과도기로 들어갑니다. 30개 교구로 나누고 자연스럽게 한 교회가 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30개 교회 담임은 누구를 세우는가. 부교역자 중 15명을 세우고, 나머지 15명은 외부 인격과 영성을 갖춘 훌륭한 분들을 추천받을 생각입니다. 우리들끼리 잔치 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이 30개 교회는 이름에 ‘우리’를 못 붙입니다.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완전한 독립 교회입니다. 그리고 분당우리교회는 약속 그대로, 장년 출석 기준 5천명 이하로 될 때까지 파송합니다. 제 은퇴 기간까지 이 기조는 지켜나갈 것입니다.

 

제 마음에 계속 두려움 있었던 것이, ‘제가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아닌가’였습니다. 별의별 생각을 다했습니다. 이렇게 약속드렸습니다. 내후년 파송운동이 시작되면, ‘강제 안식년’을 맞게 될 것입니다.

 

저 스스로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최대 1년간 강제 안식년을 떠나 있다가, 복귀하는 날 기준 1년 내에 5천명 내로 성도가 줄지 않으면 사임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 운동은 자발성이지, 강제성을 띠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모든 선택권은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지역을 따라 30개 교회로 가셔도 되고, 안 가셔도 됩니다. 동네 작은 교회로 옮기셔도 되고, 남으셔도 됩니다. 전혀 문제 없습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 5천명 미만으로 줄지 않으면 사임하겠다는 것은 개인적인 약속을 드린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주신대로 선택하고 결정하시면 됩니다.

 

이 드림센터도 사회와 교회를 위해 쓰겠다고 했습니다. 지난 설교를 다시 들어보고 꼼꼼히 점검했습니다. 분명히 약속했습니다. 교회와 사회를 위해 기증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제 당회에서 이미 이 내용들을 갖고 착수에 들어갔습니다. 지금이 7년차인데, 3년 뒤에 어떤 꼼수도 없이, 있는 그대로 이 건물을 사회에 환원할 것입니다.

 

이런 움직임이 이벤트가 되면 곤란하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벤트는 소음입니다. 무브먼트가 돼야 합니다. 처음에는 팔아서 어디 기증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일시로 하는 것은 이벤트처럼 느껴졌습니다. 건물을 기증해서 무브먼트가 일어나길 원합니다.

 

다음 세대 살리는 일에 서현 드림센터를 비롯해 가평 우리마을과 우리교회가 전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묵상을 하다가, 어느 날 하나님이 다음 세대가 네 종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첫째 대상은 목회자 청년입니다. 목회자 청년에도 세 부류가 있습니다. 젊은 신학생, 젊은 부목사, 젊은 담임목사입니다. 사회 법을 보니, 기증자가 이런 용도로 써 주기를 정관에 넣고 기증하면 받은 사람이 그 일을 구현해내도록 돼 있습니다. 우리가 하지 않습니다. 기증받는 이사장과 이사들과 팀에서 4가지 정신을 구현해 주기를 바라면서 기증할 것입니다.

 

다음 세대를 살리는데 첫째로 젊은 목회자입니다. 이 건물은 말할 것도 없고 가평 우리마을에서 목회자 학교가 열리고 신학생과 목회자들이 제대로 훈련받도록 도우면 좋겠습니다.

 

미자립교회 목회자들도 어떻게든 도와야겠다 해서, 세워지는 30개 교회들마다 ‘미자립교회 목회자들 설교 준비실’을 만들 것입니다. 사모님들이 편의점 마트에서 생계 유지하는데, 목회자들에게 책 한 권 사볼 돈이 있겠습니까. 언제든지 와서 주석을 참고하고 서적도 볼 수 있고 컴퓨터로 설교 원고를 작성해 프린트까지 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함께 교회를 세워가는 플랫폼을 만들어가는 무브먼트입니다.

 

두 번째로 예수 믿는 청년들입니다. 개설된 성윤리연구소뿐 아니라, 기독교적 가치관과 세계관을 갖도록 돕는 일입니다. 청년부와 주일학교를 돕는 일을 드림센터에서 해 주면 좋겠습니다.

 

세 번째는 비신자 다음 세대입니다. 이 센터가 교회와 사회를 위해 쓰임받도록 약속했는데, 이곳은 교통이 너무 좋습니다. 예수 믿는 청년이든 안 믿는 청년이든, 젊은이들이 드림센터에서 직업을 배우게 하고 창업을 돕는 일들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장애인 다음 세대입니다. 이미 우리가 2개 층에서 하고 있듯, 잘 섬기면 좋겠습니다. 이런 내용들을 가지고, 분당우리교회가 파송운동을 하길 원합니다.

 

먼저 순장님들에게 이런 내용들 2주 전 같이 나눴더니, 마음 아픈 소식들이 들렸습니다. 많이 울었습니다. 지금도 마음이 아픕니다. ‘제가 안 나간다고 하니 목사님이 나간다고 하신다고, 마음이 아프다’고 합니다.

 

저도 마음이 아픕니다. 지금까지 6곳을 분립 개척했는데,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어느 집사님 권사님들이 간다고 할 때마다 슬프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겪었으면 안 하면 되는데, 왜 해야 합니까.

 

역병으로 시대가 위기를 만났을 때, 이교도들과 달리 초기 기독교인들이 목숨을 무릅쓰고 도왔습니다. 그게 죽는 길인 것 같았는데, 결과를 보니 도망간 이교도들 30%가 죽을 때 기독교인들은 10%만 희생됐습니다.

 

오늘 우리의 시도가 너무 가슴아픈 일인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우리를 살리시는 일일 것입니다. 우리도 웃고, 많은 한국교회 성도님들도 웃게 하는 일이라고 확신합니다. 눈 가리고 시늉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우리가 정말 죽읍시다. 진짜 제대로 죽을 때, 주님이 우리를 살려주실 줄 믿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전 성도님들이 오늘부터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일입니다. 세례 요한이 대단한 인물이 아니라, 말씀이 그를 견인했기에 순교의 자리에까지 나아갔습니다. 인간의 알량한 머리에서 나온 이벤트가 아니라, 당회 장로님들과 제가 오랜 시간 동안 고뇌하면서 여기까지 의논해 왔듯이, 전 교회적으로 어떻게 하면 이런 무브먼트가 제대로 일어날지 기도하면서 말씀을 사모하는 믿음의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결론입니다. 이런 내용이 다 오픈되고 나서, 사역 장로님에게 이메일이 왔습니다. ‘갈증을 해소할 길 없어 목마른 사슴이 샘을 찾아 헤매던 저를 인도해 주셔서 참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듣고 아내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 1년 이상의 시간이 남았다고 위로하면서, 떠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기로 했습니다. 목사님이 원망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하는 목사님의 마음은 얼마나 힘드시겠습니까. 기도로 동참하겠습니다.’

 

마가복음을 설명하는 많은 참고서 중 신현욱 교수님의 글을 읽겠습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날마다 비우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날마다 채우기만 한다면 동양 철학의 수준에도 못 미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줄르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가까이는 이 나라가 위기에 빠진 가운데 기독교인들의 희생을 보고, 내 한 교회만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모든 교회들이 힘을 얻어 손을 잡고 일어나는 위대한 꿈을 꾸면서, 남은 기간 하나 하나 차질 없이 아름다운 예배를 올려드리는 분당우리교회가 되길 소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종교신문1위 크리스천투데이 기사-->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29049

 

[이찬수 목사 설교 전문] 1만 성도 파송 운동의 정신

가정에서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님들에게도 이 자리에서 드리는 것과 또같은, 그 이상의 은혜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영상으로도 광고를 보셨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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