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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계 명설교

[김명혁 목사 설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by 크리스천투데이 일본지사 2023.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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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영천 하나승리교회
일시: 2022. 11. 13
본문: 살전 5:16-18

 

▲김명혁 목사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크투 DB

오늘 무슨 제목의 설교를 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우기진 목사님이 다음 주일이 추수감사주일이니까 감사에 대한 설교를 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추수감사주일을 한 주일 앞두고,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 합니다. 너무너무 귀중하고 축복된 제목이라고 생각합니다.

 

1. 항상 기뻐하라

 

제일 먼저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저는 인생의 보람과 행복은 부귀영화보다는 “기쁨”과 “즐거움”을 지니고 사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범죄의 결과는 근심과 걱정, 불평과 불만, 염려와 두려움, 분노와 증오이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구원과 축복의 결과는 “기쁨”과 “즐거움” 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구원과 축복의 결과로 인간에게 “기쁨”과 “즐거움”이 주어지게 된 것을 지적하고 또 지적하고 있습니다. 어두움과 절망의 세상에 성자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천사들이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눅 2:10).

 

성자 예수님께서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의 주인공으로 세상에 오셨는데 성자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도 환경에 지배를 받지 말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거듭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 5:11,12).

 

성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앞에서 두려움과 불안에 싸여있던 제자들에게 “평안”과 “기쁨”을 채워 주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내가 이것을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케 하려함이라”(요 15:11).

 

결국 성자 예수님의 제자들은 나중에 예수님을 위해서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가서 채찍질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면서도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저희가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행 5:40,41).

 

사도 바울은 나중에 환난 중에서도 핍박 중에서도 기뻐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롬 5:3).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10).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 “기쁨”과 “즐거움”을 몸에 지니고 사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저에게도 “기쁨”과 “즐거움”을 몸에 지니고 한 평생을 행복하게 살게 하셨습니다. 요사이 우울증에 걸린 청소년들과 노인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저는 한 평생 “우울증” 이란 것을 알지도 못하고 “기쁘고” “즐겁게” 지냈습니다. 얼마나 큰 은혜와 축복인지 모릅니다.

 

저는 11살 때부터 사랑하는 부모님과 동생들을 평양에 두고 캄캄란 밤에 38선을 혼자서 뛰어넘어 남쪽에 와서 고아와 나그네로 외롭고 슬픈 삶을 살았지만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바로 믿고 바로 예배 드리고 바로 섬기려는 일편 단심의 마음을 지니고 한 평생을 근심과 걱정과 두려움을 모르는, 모든 것을 뚫고 나아가는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고, “기쁘고” “즐겁게” “막가파”로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제가 강변교회를 개척해서 28년 동안 목회한 목회는 “기쁨”와 “즐거움”이 충만한 행복한 목회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1999년 2월 7일 주일 강변교회에서 “즐겁게 살도록 지음 받은 존재” 라는 제목으로 간증 설교를 한 다음 『즐겁게 살도록 지음 받은 존재』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기쁘고” “즐겁게” 살도록 지음 받은 귀중한 존재들입니다.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기쁨을 지니고 모든 것을 뚫고 나아간 사도 바울의 당당한 고백을 인용합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1-34).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힌 죄수가 되었지만 주님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성도들의 사랑 안에 있었기 때문에 크게 기뻐한다고 고백하고 또 고백하고 또 고백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빌 1:3-5).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빌 2:17,18).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빌 4:1).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빌 4:10). 로마 감옥에서 쓴 빌립보서에 “기쁨” 이란 말이 17번이나 나옵니다. 사도 바울이야말로 “기쁨”이 충만한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근심과 걱정, 원망과 불평, 염려와 두려움은 불신앙의 증표이고 어두움의 세력이 가져다 주는 해독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앞으로 어떠한 환경에 처하든지 주님 안에서, 성도들 안에서, 자연의 품 안에서, 그리고 주님을 위해서 수고하면서,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게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의 몸과 마음과 영혼에 “평안”과 “기쁨”과 “즐거움”을 날마다 채워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그래서 다윗처럼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시 4:7,8).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시 16:3).

 

2. 쉬지 말고 기도하라

 

그 다음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저는 신앙생활의 기본과 본질은 “쉬지 말고 기도하는” “기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약 성경은 물론 구약 성경도 “기도”의 중요성을 거듭해서 지적했습니다.

 

한나는 “기도에 전력하는” “기도”의 어머니였고, 사무엘은 “기도에 전력하는” “기도”의 어린 아이와 청년이었는데, 한나와 사무엘 두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받았습니다. 한나는 기도를 계속했는데 이렇게 즐거움과 기쁨을 지니고 기도했습니다. “한나가 기도하여 가로되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삼상 2:1).

 

사무엘은 아이 때부터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겼다고 성경이 거듭해서 지적했습니다. “아이는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삼상 2:11). “사무엘이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 섬겼더라”(삼상 2:18).

 

결국 성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정성껏 섬기면서 기도하는 아이 사무엘을 향해서 “사무엘아” “사무엘아” “사무엘아” “사무엘아” 라고 네 번씩이나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무엘과 함께 계셔서 사무엘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고 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나타나 보이셨다고 했습니다.

 

다윗도 “기도에 전력하는” “기도”의 사람이었는데 성부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너무너무 많이 받았습니다. 다윗은 수 많은 시편을 저술했는데 대부분의 시편은 “하나님이여” 또는 “여호와여” 라고 부르짖는 “기도”의 시편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시 4:1).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시 39:12).

 

결국 다윗은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사람이 되었고 가장 큰 축복을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성자 예수님을 가리켜서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시기까지 하셨습니다.

 

다니엘도 “기도에 전력하는” “기도”의 사람이었는데 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도 전에 하던 대로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 6:10).

성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님이신데도 친히 힘쓰고 애쓰시면서 “기도에 전력하는” “기도”의 삶을 사셨습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 1:35).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눅 5:16).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눅 9:18).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눅 22:44).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마 21:13).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눅 21:36).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마 26:41).

 

하나님의 아들이 되시는 성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친히 힘쓰고 애쓰시면서 “기도에 전력하는” “기도”의 삶을 사신 것을 생각하면 기도에 게으른 우리들은 너무너무 부끄러워서 머리를 들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 교회라고 할 수 있는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들과 성도들은 “기도와 말씀에 전력하는 삶”을 살았다고 했습니다.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행 1:13,14).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42).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가로되 대 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은 이시요”(행 4:24).

 

예루살렘교회 열두 사도들은 다음과 같은 결연한 선언을 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행 6:3,4).

 

사도 바울도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은 다음부터는 항상 “기도”를 드리면서 살았고 그리고 항상 “기도”를 힘쓰면서 살라고 권면을 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4).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내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롬 1:9,10).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엡 1:16). “우리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살전 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롬 12:12).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 4:2).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6,17).

 

“회개의 기도”와 성도들을 위한 “중보의 기도”에 전력한 사도 바울은 참으로 귀중하고 참으로 축복받은 사람이었고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의 아버지들이라고 불리시는 길선주 목사님과 이기풍 목사님들께서는 “회개의 기도”와 “은혜 사모의 기도”에 전력을 다하셨고,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순교자들이신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께서도 “회개의 기도”와 “은혜 사모의 기도”에 전력을 다하셨고, 한국교회 대표적인 부흥사들이신 이성봉 목사님과 김치선 목사님들께서도 “회개의 기도”와 “은혜 사모의 기도”에 전력을 다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길선주 목사님께서는 한국교회의 “새벽기도”를 시작하게 하셨고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을 일으키셨습니다. 이기풍 목사님께서는 제주도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기도와 함께 사랑과 섬김에 전력하시면서 제주도 복음화를 성취하셨습니다. 이성봉 목사님께서는 한국교회 안에 회개 운동과 은혜 사모의 운동을 일으키셨고, 김치선 목사님께서는 한국교회 안에 처절한 회개 운동과 산 기도와 은혜 사모의 운동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저에게도 “기도”를 귀중하게 여기면서 한 평생을 보람되게 살게 하셨습니다. “새벽기도”의 귀중함을 가르쳐주신 분들은 평양 서문밖교회의 주일학교 선생님들인 이인복 명선성 최병목 선생님들이었고, “회개의 기도”와 “은혜 사모”의 귀중함을 가르쳐주신 분들은 한국교회의 무디 이성봉 목사님과 한국교회의 예레미아 김치선 목사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족하고 또 부족한 저는 어릴 때부터 평생토록 “새벽기도”에 전력하고 “회개의 기도”와 “은혜 사모의 기도”에 전력하면서 살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사실 저는 지금도 잘 때가 깰 때나 걸어갈 때나 운전할 때에도 중얼거리면서 “회개의 기도”와 “은혜 사모의 기도”와 “감사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3. 범사에 감사하라

그 다음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세상에서 귀중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사람은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 대신 근심과 걱정, 불평과 불만에 사로잡혀서 사는 사람은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는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질 때 생깁니다.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면 모든 것이 감사합니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감사하고, 눈이 오면 눈이 와서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들이 세상에 살면서 감사해야 할 조목들 네 가지를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내가 하나님께서 지으신 신령한 사람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우리들은 얼마든지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즉 신성을 지닌 사람으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우리들은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면서 감사와 감격에 넘쳐서 이렇게 시를 읊었습니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 막측하심이라”(시 139:14). 두려울 정도로(fearfully) 놀라울 정도로(wonderfully) 신비하게 지음을 받았다는 고백입니다.

 

우리들이 세상에서 살면서 감사해야 할 조목들 중 첫째는 내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즉 신성을 지닌 귀중한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우리 죄인들이 회개하며 기도하고 싶을 때 회개하며 기도할 수도 있고, 정성껏 예배 드리고 싶을 때 정성껏 예배 드릴 수도 있고,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면서 살고 싶을 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면서 살 수도 있고,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싶을 때 감사와 찬양을 드릴 수 있는 귀중한 존재로 지음 받은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우리들은 일평생 감사하고 또 감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있습니다.

 

둘째로, 우리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고 도와주시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들과 함께 하시고 우리들을 도우신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우리들은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성자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사랑하시고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늘 영광을 내 버리시고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셨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그리고 지금도 십자가의 보혈을 우리들의 몸과 마음과 영혼에 부어주심으로 온갖 죄악과 허물들을 사하시고 계신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우리들은 일평생 감사하고 또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성자 예수님께서 건강한 사람들보다는 병자들을 부르시러 오셨고, 의인들보다는 죄인들을 부르시러 오신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우리들은 일평생 너무너무 감사하고 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 9:12,13). 제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사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수 많은 병자들과 죄인들을 찾아 다니시면서 병자들과 죄인들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셨습니다. 얼마나 고맙고 얼마나 감사하고 황송한 일인지 모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를 부르시고 만나 주시고 구원해 주신 성자 예수님 때문에 항상 예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렸습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딤전 1:15,16).

 

사도 바울은 성자 예수님께서 자기를 죄에서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자기를 주님의 귀중한 일꾼으로 삼으시고 사도의 직분까지 맡기신 것을 인해서 평생토록 감사했습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 1:12).

 

성자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찾아와서 만나 주시고 구원해 주시고 그리고 저와 여러분들을 주님을 섬기는 주님의 종들과 심부름꾼들로 삼아주신 일은 우리들이 영원토록 감사하고 또 감사하면서 찬양하고 또 찬양할 만한 일입니다.

 

셋째로, 아름다운 교회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우리들은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성자 예수님께서 피를 흘려서 사신 예수님의 몸인데 어머니의 품과 같은 따뜻한 곳입니다. 교회의 품 안에 들어오면 사죄의 은혜와 치유의 은혜와 위로와 축복의 은혜가 주어집니다. 격려와 용기의 은혜가 주어집니다. 성도들과의 친밀한 사랑의 교제도 주어집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시 65:4).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시 84:4).

 

성부 하나님께서는 성전 즉 교회를 지어서 드리는 솔로몬에게 다음과 같은 놀라운 은혜와 축복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찌라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이는 내가 이미 이 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으로 여기 영영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대하 7:14-16).

 

이 땅에 성부 하나님의 눈과 귀와 마음이 향하고 계시는 교회, 성자 예수님의 피로 사신 주님의 몸 된 교회, 그리고 성령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령님의 전인 교회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귀중하고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렇게 찬송을 부릅니다. “내 주의 나라와 주 계신 성전과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찬 246).

 

제가 고등학생일 때 대구 주암산에서 열린 김치선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부흥회에 참석했는데 어느 시간에 찬송을 부르다가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 라는 가사에 너무 깊은 감동을 받고 저는 울고 또 울고 또 운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평생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면서 감사와 행복을 지니고 살게 되었는데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넷째로, 고난과 박해와 역경을 인해서도 우리들은 얼마든지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은 고난과 박해와 역경을 인해서도 감사를 드립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과 박해와 역경에 아주 조금이라도 참예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 다니엘은 사자 굴에 들어가는 위기에 처해서도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 6:10). 욥은 극심한 고난과 역경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경배와 찬송과 감사를 드렸습니다(욥 1:20-22).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당하는 고난과 박해와 역경 중에서도 오히려 즐거워하고 찬미하며 감사했습니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행 16:25).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사도 바울은 자기가 몸에 짊어진 불치의 병을 인해서도 기뻐하면서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10).

 

사도 바울은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당한 수고와 고난과 핍박과 박해의 리스트를 길게 나열하기도 했습니다(고후 11:23-33). 주님을 위해서 수고와 고난과 박해와 역경을 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귀중하고 더 보배롭고 고맙고 감사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스데반 집사와 폴리캅 감독과 토마스 선교사와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께서는 주님을 위해서 수고와 고난과 박해와 역경과 죽임을 당하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찬송가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패니 크로스비는 평생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맹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패니 크로스비는 이 세상에서 제일 많은 찬송시를 쓴 찬송가의 여왕이 되었습니다. 패니 크로비는 95세까지 수 많은 찬송시를 만여 개나 쓰면서 감사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패니 크로스비가 92회 생일을 맞았을 때 그의 생일을 축하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있으면 내게 데려오세요. 그 사람과 악수하고 싶어요.” 패니 크로스비의 가슴과 찬송가에는 주님을 향한 감사와 사랑과 찬송으로 가득합니다. 우리 나라의 찬송가에 패니 크로스비의 찬송시가 23개가 있습니다. 제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찬송들입니다.

 

조니 에릭슨 타다는 예쁘고 장래가 촉망되던 소녀였는데 다이빙을 하다가 머리를 부딪혀서 전신 마비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도 자신도 모두를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차츰 “고난과 슬픔과 아픔”이 보석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조니 에릭슨 타다는 전신마비로 인한 불구의 몸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면서 아름답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장애인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심어 주는 장애인들의 천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1988년 미국 휫튼 대학에서 39살 난 조니 에릭슨 타다의 손을 붙잡고 인사를 나누었을 때 저는 그녀에게서 천사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에릭슨은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전도 집회에 참석하여 고난 가운데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간증하곤 했습니다.

 

에릭슨은 그의 자서전 「죠니」에서 “지금의 불구의 삶을 어느 무엇과도 바꾸지 않겠다” 라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1996년 7월 암스텔담에서 조니 에릭슨을 다시 만나 그녀의 손을 붙잡고 인사를 나누었을 때 그녀는 여전히 천사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닉 부이치치는 두 팔도 두 다리도 없지만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니고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수년 전에 닉 부이치치를 대구에서 만났는데 그의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했고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닉 부이치치는 지금도 세계 곳곳을 찾아 다니면서 절망 중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며 소망과 용기를 불어넣는 소망과 행복의 천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이 주신 기쁨과 위로를 전할 수 있어 너무 감사합니다. 나 역시 많은 사람들이 들려주는 역경 스토리를 통해 많은 은혜를 받습니다.” 너무너무 귀중하고 보배로운 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불치의 병과 약함을 지닌 닉 부이치치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받은 너무너무 귀중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결론

 

오늘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 가장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라는 아주 귀중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근심 걱정하고 불평 불만하면서 염려와 두려움을 지니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항상 기뻐하면서 쉬지 말고 기도하면서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을 향하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이것이 복음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방식이고 모습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사랑하는 우기진 목사님과 영천 하나승리교회 성도님들 모두 어려운 환경 중에서도 망극하신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위로와 평안과 기쁨과 축복 가운데 “항상 기뻐하면서 쉬지 말고 기도하면서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귀중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사역자들과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며 축원합니다.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원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명예회장

 

종교신문1위 크리스천투데이 기사 -->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50994

 

곧 추수감사주일… 감사할 줄 아는 마음에서, ‘감사’가 생깁니다

장소: 영천 하나승리교회 일시: 2022. 11. 13 본문: 살전 5:16-18 오늘 무슨 제목의 설교를 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우기진 목사님이 다음 주일이 추수감사주일이니까 감사에 대한 설교를 하면 좋겠다

www.christian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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